저성장과 내수부진, 미국의 정권교체로 인한 경제정책 불확실성에 놓인 한국 경제가 국내 정치상황과 겹쳐 혼란스럽기만 하다. 단기적 환율 상승과 금융시장 불안이 나타난 가운데 다음 달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있어 장기적인 경제 불안정은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번 혼란은 경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반과학적’ 기조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에 전 세계 과학기술자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트럼프 1기’가 보여 준 반과학적 수사와 행동을 앞으로 4년 동안 반복하면서 전 세계 과학기술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과학 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분석했다.
한국에서도 미국 대선 결과가 확정된 직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각각 우려의 목소리가 담긴 정책분석 보고서를 발빠르게 내놨다. 이들이 눈여겨 본 부분은 ‘미국 우선주의’이다. 이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자국 우선주의는 과학기술 이슈와도 연계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각국의 과학기술 혁신정책 방향의 변곡점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아메리카 퍼스트 시대에 한국 제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한 전략적 보호조치와 대외기술 전략 전면 재검토를 강조했다.
실제 미국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글로벌 과학기술 협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로 인해 일부 분야에서 국제적인 협력이 제한되거나 둔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 당선인이 반도체 보조금 폐지와 높은 관세 부과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반도체 업계는 새로운 변수에 직면했다.
이른바 ‘국가 안보’를 이유로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제조와 연구를 담당할 인력이 해외로 취업하거나 이직하는 것을 제약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 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회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반도체 업계가 우려하고 있다.
글로벌 연구 협력이 지속적으로 중요한 시대에 국가 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협력보다는 각국의 기술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감에 따라 학문 간의 ‘동종교배’가 우려된다. 즉, 국내 연구자들만의 한정된 논의와 협력이 이뤄져 연구의 범위가 좁아지고, 글로벌 연구 환경 및 과학기술 발전이 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과학기술 협력 제한’을 펼친 미국과 달리 중국은 ‘무비자 정책’을 내세워 전 세계의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려고 노력했다. 외국인 연구자들이 중국에 연구를 목적으로 방문하는데 있어 비자 절차를 간소화하고, 이를 통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인했다.
미국의 협력 제한과 중국의 인재 유인에 대해 우리나라는 효과적인 대응법을 강구해야 한다. 한국은 해외 유학과 같은 기존 방식을 넘어, 보다 전략적인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저개발국 인재에게 연구비나 연구 기회를 제공해줌으로써 국제적 과학기술 커뮤니티 형성은 물론 세계적 연구 네트워크 허브로서의 입지를 다질 필요가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우리 조선산업을 언급하며 협력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미국은 자국 내 무너진 반도체 조선 원전 분야 제조 생태계를 되살리기 위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이 한국을 기술적 상호보완이 가능한 주요 동맹국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한국은 우리 산업정책에 미국의 의도를 적극 반영하면서 협상카드로 활용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실제로 대만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를 내세운 ‘실리콘 실드’ 전략으로, 일본은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미국과의 기술동맹을 바탕으로 중국을 견제해 지역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예측 불가능한 협상의 대가로 꼽힌다. 협상에서 정해진 논리와 원칙보다는 상황에 따라 자기의 이익을 관철하는 만큼 이에 대응할 협상 카드로 강력한 과학기술이 필요하다. 미래 과학기술 선점은 연구개발(R&D) 투자와 현장 연구자 중심의 정책 수립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으로 지금 중요한 것은 속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