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싫어하는 사람도 새해마다 바뀐 연도와 나이를 알게 된다. 약속 날짜와 시간의 수는 거의 매일 만난다. 무심하게 마주하는 일상의 수는 다양한 감정과 버무려져 각자의 삶에 나름의 의미로 기억된다. 삶의 배후에도 변화하는 계절과 달의 모양 같은 행운과 불행의 운명적 주기가 존재할까?
5행(화 수 목 금 토)을 음양으로 각각 나눈 10개의 하늘 기운과 12종의 땅 기운을 대표하는 동물 신의 조합은 10과 12의 최소 공배수 60을 주기로 순환한다. 엄지손가락으로 나머지 4개의 손가락마다 나눠진 세 마디를 하나씩 헤아리면 12를 구분할 수도 있다. 영어에 dozen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듯 서구 문화권에도 12개의 별자리로 운명을 예측한다. 그리스 신화의 올림포스에도 12명의 신이 있다. 최후의 만찬에 함께한 예수의 제자 역시 12명이었으며 요한계시록에는 12개의 문과 12명의 천사가 등장한다. 태양의 위치와 달 모양의 변화 주기 360을 30으로 나누면 12가 된다. 밤하늘 별의 궤적은 원을 만들고 원의 반지름이 만든 정삼각형의 내각은 60도다. 수메르인들은 60진법을 사용했다. 1 2 3 4 5 6은 60의 약수지만 7부터는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다. 자주 보이는 다섯 행성(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에 태양과 달까지 추가하면 7이 되고 바빌로니아인들은 7개의 모서리를 지닌 문양으로 수메르의 전통을 계승했다. 이집트 유학을 떠난 피타고라스는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있던 시기에 그 모든 것을 배웠다. 그리하여 현의 길이 비율에 따라 바뀌는 순환의 12음계를 만들고 7개의 태양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의 거리를 음에 대응시켰다. 자신에겐 우주의 화음이 들린다고 했다. 7음계와 5음계는 재즈나 전통음악에서도 사용된다.
그러나 무리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피타고라스의 12음계는 기준 음과 어긋나게 돌아오는 불완전한 회귀였다. 12개의 달로 구성된 그레고리력 또한 그렇다. 태양의 공전주기는 365일에 소수점의 날 수가 더해져 있으며 달의 겉보기 주기 역시 30일에서 소수점 몇 자리가 모자란다. 태양계에는 7개 이상의 행성과 소행성까지 있으며 그들은 원에서 미세하게 어긋난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 과학은 무리수와 허수까지 사용하지만, 현대인은 여전히 자연수에 삶의 운명을 기대고 있다.
34살의 젊은 화가 로만 오팔카는 검은색 캔버스 위에 흰색의 수를 쓰기 시작했다. 좌측 상단 모서리에서 1을 시작해 줄을 바꿔가며 차례차례. 그렇게 우측 하단 모서리까지 가득 채우면서 같은 규격의 캔버스에 수를 연장해 써나갔다. 수의 규모가 커진 3년차부터는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한 수를 들으며 작업을 이어갔다. 간혹 실수로 잘못된 수를 쓰기도 했지만 지우지 않고 옆자리에 계속 써나갔다.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실수도 개인의 역사에선 지워버릴 수 없지 않은가? 매일 작업을 마친 후에는 초상사진도 남겼다. 어제와 오늘은 같아 보여도 작년과 올해는 달라 보인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고 노화는 죽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바탕을 회색으로 바꾸고 그로부터 다시 4년이 지난 후에는 캔버스를 바꿀 때마다 1%씩 밝은 바탕을 사용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퇴색되어 가는 한 개인의 삶처럼 흰색의 수는 점차 흰색 바탕과 구분하기 어렵게 묻혀 갔다. 수는 100만을 넘어서고 있었다. 1965년 시작된 무한을 향한 여정 ‘1965/1-∞’ 프로젝트는 그렇게 47년을 지속한 후 그의 죽음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80세를 끝으로 그가 남긴 마지막 수는 ‘5607294’. 삶에 주어진 유한의 시간 동안, 닿을 수 없는 무한을 향했던 무모한 시작. 비록 이 부조리한 실존적 여정은 미완의 유한수에서 멈췄지만 작가의 죽음으로 작품은 완성된 셈이다.
끝나거나 다가오는 지난해와 새해 모두 어쩌면 세상의 인위적 틀이다. 각자의 삶의 선분 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만의 고유한 수가 빼곡하게 있을 뿐이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행과 슬픔을 마주하는 내 모습까지 삶의 일부로 품을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