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퇴계 이황은 조선 전기 성균관 대사성, 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문과에 급제해 관직에 몸담았으나 1545년(명종 즉위) 을사사화 이후 고향 퇴계에 은거해 학자의 삶을 살며 후진 양성에 힘을 썼다.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노송정 종택은 이황의 생가로 본채 중앙에 삼면을 계자난간으로 둘러 누각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 이황의 조부 이계양이 조선 단종 2년에 지은 노송정 종택은 1501년 이 집 몸채 한가운데 있는 ‘튀어나온 방’에서 이황이 태어났다고 하여 ‘퇴계태실’이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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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 태실. |
퇴계태실을 사방으로 둘러싼 산들은 뒷골 덕골 동막골 서당골 등 지명에 ‘골’자가 많다. 골이 많다는 것은 움푹 패어 들어간 곳이 많다는 뜻으로 자칫 수맥의 연장선상에 집이 놓일 수가 있는데, 태실이 자리한 터는 다행히 수맥의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용두산에서 발원한 온혜천이 태실 앞을 두르면서 흘러 터를 강화시키고, 태실의 좌측에는 토계천이 내려오면서 좌청룡(좌측산)을 더욱더 탄탄하게 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서 좌측으로 곧장 가면 만나볼 수 있는 퇴계태실은 방뿐만 아니라 주변 언저리까지 생기의 세찬 분출을 느낄 수 있다. 퇴계태실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이황이 초기에 학문을 가르친 계상서당이 있다. 주산(뒷산)인 건지산의 힘찬 용맥(龍脈·산능선)이 내려와 정기가 서린 곳에 자리한 서당은 앞쪽의 토계천과 함께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을 갖추었다.
계상서당은 싱싱하고 힘찬 기운이 가득 찬 곳으로 생전에 자주 머물던 이곳에서 이황은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 계상서당에서 차량으로 5분 거리에 있는 이황의 묘는 통통하게 살이 찌고 깨끗한 용맥이 좌우요동을 하면서 서서히 내려와 혈(穴)이 맺힌 길지(吉地·명당자리)에 고즈넉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황 묘는 남자 후손에서 인물이 난다는 좌청룡(좌측산)의 산세가 좋으며, 우백호(우측산)와 안산(앞산)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나 낙락장송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류성룡은 세종 시대의 황희, 동시대의 이원익, 정조 시대의 채제공 등과 더불어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명재상으로 꼽힌다. 이황의 수제자로도 알려진 류성룡은 이황이 “이 사람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라고 할 정도로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의성군에 있는 만취당(보물 제1825호)은 김사원이 선조 17년(1584)에 완공한 사대부집으로 서애 류성룡이 태어난 곳이다. 만취당이 있는 사촌마을은 안동김씨 집성촌으로 마을 서편에는 서림(천연기념물)을 조성해 방풍림 역할을 하도록 했으며, 만취당 앞 골목에 있는 500년 된 노거수(老巨樹·수령이 많고 커다란 나무)인 향나무는 당산목(堂山木·마을을 지켜주는 나무)으로 마을 곳곳에 풍수적 요소를 두고 있다. 만취당의 안방은 류성룡이 태어난 곳으로 싱싱하고 힘찬 기운이 강하게 솟구친다.
안동시 풍산읍 수리에 서애 류성룡의 묘가 있다. 묘는 용맥이 다부진 면이 적고 다소 퍼진듯하지만, 좌우요동을 활기차게 하면서 내려와 혈을 맺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좌청룡과 우백호가 잘 갖춰져 있고 우백호가 안산 역할도 하면서 묘를 침해하는 살기를 잘 막고 있다. 류성룡은 1607년 안동시 풍산읍 서미동 초가삼간 농환재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황과 류성룡의 생가는 생기가 흐르며, 묘는 정기를 품은 좋은 자리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황이 태어난 퇴계태실이 최고의 생기를 내뿜는 산실이다. 이황은 나라를 위해 인재를 양성하고, 류성룡은 인재를 등용했다. 그러고 보니 이황과 류성룡은 닮은 점이 꽤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