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안전법에 따르면 재난은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구분한다. 싱크홀(땅꺼짐)은 ‘붕괴’ 사고이기 때문에 사회재난이고 인재(人災)에 해당한다. 후진국에서는 싱크홀이 천재(天災)로 뒤바뀐다. 따라서 책임자도 방지대책도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싱크홀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싱크홀이 발생하려면 다음과 같이 3가지 요소가 만족해야 한다. 첫째, 흙과 모래로 구성된 지층(충적층)이 있어야 한다. 둘째, 지하수가 충분히 공급되어야 한다. 셋째, 지하수와 흙(모래)을 받아주는 지하공간이 있어야 한다. 건물 터파기 공사, 터널 공사 등으로 이런 지하공간이 형성된다.
2014년 서울 강남(송파 잠실 등)에서 크고 작은 싱크홀 현상이 여기저기 발생했다. 높이 555m인 123층 롯데빌딩 건설이 한참 진행되던 당시 롯데빌딩이 싱크홀 때문에 무너지리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서울시민은 불안에 떨었다.
이 지역은 한강을 매립해 만든 지역이고, 충적층이 약 20m 정도로 발달되어 있다. 또한 한강과 석촌호수에서 무한대의 지하수를 공급할 수 있고, 롯데빌딩의 터파기 공사와 지하철 9호선의 터널공사 등이 인근에서 진행돼 지하수와 흙을 받아줄 수 있는 지하공간이 형성됐다. 싱크홀이 생겨날 조건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구조다.
당시 서울시는 조사단장인 필자를 포함해 20여 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싱크홀 조사단을 통해 싱크홀 발생 원인을 찾아내는 등 시민의 불안을 해소시켜야 했다. 전문가들은 롯데빌딩, 석촌호수, 지하철공사, 광역상수도, 폐상수관, 노후화된 하수관로 등을 싱크홀 발생 원인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싱크홀을 발생시킨 가장 결정적 원인이 무엇인지는 오리무중이었다.
문제를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땅속에 집채만 한 큰 공간이 생기려면, 그 흙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흙이 상수관(수돗물)으로 유입되면 난리가 날 것이고, 하수관로로 인한 싱크홀은 규모가 작다. 롯데빌딩을 건설하기 위한 지하 터파기(깊이 46m 정도) 공사장으로 흙이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터파기 공사가 완료됐기 때문에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대규모 싱크홀은 지하철공사 터널을 따라 발생했고, 최종적으로 밝혀진 결정적인 원인은 터널 안으로 유입된 흙이었다. 즉 지하철공사의 부실 관리가 가장 큰 문제였다. 지하수가 발달된 지역에서 지하공사를 하면 지하수가 공사장으로 유입되는데, 흙은 지하수와 섞여 흙탕물 형태로 움직인다. 석촌호수와 한강 물이 지속적으로 공급돼 흙탕물이 흐르게 되는 것이다.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자 적절한 대책이 마련됐다. 지하안전 특별법이 2016년 제정, 2018년 시행되는 등 지하공간을 안전하게 개발하고 공공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일정 규모 이상 지하공사를 하려면 지하안전평가를 해야 하고 그 주요 평가항목은 지반 및 지질 현황, 지하수 흐름조사, 굴착공사에 따른 지반안전성 분석과 주변 시설물의 안전성 분석 등이다. 서울시는 지하굴착 심의제도를 부활시켜 지하공사의 안전성을 더 강화했다.
부산시에서도 크고 작은 싱크홀이 발생해 시민이 불안에 시달렸다. 2023년 만덕 지하도로(터널)에서 싱크홀이 발생했으나 부산시는 사고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그냥 덮었다. 강서구 명지 등지에서 발생한 싱크홀도 적당히 넘어갔다. 원인 분석이 없었으니 당연히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 2024년 사상~하단선 지하철 공사구간에서 11건의 싱크홀이 발생했지만 부산시는 분석과정에서 결정적인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단지 공법변경, 우수박스 부실, 차수벽 부실 등을 원인으로 제시했다.
핵심적인 질문은 이것이었다. 트럭 2대가 처박힌 싱크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던 흙은 어디로 갔는가이다. 부산시는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 정확한 원인을 밝히지 못하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대책도 마련하지 못했다. 전형적인 후진국형 재난 대응 방식이다.
낙동강변 모래 위에 발달한 도시(사상 사하 등)와 김해평야 일원은 충적층 위에 있고 낙동강 물이 지하수 공급원이 되기 때문에, 터널 공사와 터파기 공사를 진행하면 싱크홀이 발생할 수 있는 충분조건을 갖췄다. 앞으로도 많은 공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부산시는 지하안전특별법에 근거해 싱크홀 발생의 위험성을 줄여야 한다. 인재를 덮으려는 부산시의 후진행정 대신 비록 천재라도 인재의 요소를 찾아 제도개선을 하는 선진행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