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 자택이 모여 있어 고급 주택가의 대명사로 불리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이 연일 집회 소음으로 밤낮 없다. 윤석열 대통령 관저로 올라가는 골목길을 경계로 북쪽엔 탄핵 반대 시위대가, 남쪽엔 탄핵 찬성 시위대가 자리 잡았다. 현장 상황이 유튜브에서 실시간 중계되고 있어 부산에서도 소식이 훤하다. “이번 계엄이 성공하면 나라가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친윤 집회에 참석한 한 청년의 발언에 청중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반대편은 완전히 딴 세상이다. 반윤 지대에선 “윤석열을 파면하라” “내란 수괴 윤석열 법대로 처단하라”는 구호가 연신 쏟아진다. 영하 20도 맹추위도 아랑곳없이 길에서 날밤을 새는 이들은 어느 쪽도 쉽게 물러날 기세가 아니다.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선포로 지난달 14일 국회에서 탄핵된 지 오늘로 한달째다. 윤 대통령도 처음엔 “모든 걸 당에 일임하겠다” “법적 정치적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막상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가 본격화하자 출석 조사와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국민의힘 역시 사태 초기와 다르게 역공 태세다. 대통령과 여당의 이런 태도 변화엔 여론 흐름이 적잖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최근 조사에서 탄핵 찬성은 64% 반대는 32%로, 찬성이 여전히 배가량 높긴 하지만 격차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40% 전후로 비슷해졌다. 이런 결과는 5~6개 여론조사기관 공통이어서 쉽게 부정하기 힘들다.
윤 대통령이 지난 3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하며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자유민주주의’다. 자유민주주의의 여러 가치 중에서 핵심이 ‘권력분립’ ‘다원주의’ ‘법치주의’라는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의회주의”라는 말도 한 적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일순간에 허물려던 사람이 역설적이게도 윤 대통령 자신이다. 무엇보다 법률가 출신 대통령이 법치주의에 정면 도전하고 있다. 공수처의 수사권 행사 적절성, 체포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의 관할권 논란 등을 빌미로 관저를 철망과 경호처 직원들로 에워싸고, 바깥에는 편지까지 보내 지지자들을 선동한다. 마치 독 안에 든 쥐처럼 피해자 행세를 하지만 사실은 친윤과 반윤, 검경과 경호처의 물리적 충돌 위험을 증폭시키는 진원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다른 의미에서 윤 대통령과 데칼코마니 같은 존재다. 이 대표의 행적은 대권 플랜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대장동 사건을 변호했던 변호사들을 대거 공천하고, 지방선거 공천권 행사 후 대표직을 사퇴할 수 있게 당헌까지 개정했다. 자신의 재판은 최대한 늦게, 대통령 탄핵은 최대한 빨리 진행하기 위해 탄핵소추안에서 내란죄를 빼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다수결을 무기로 상습적 탄핵중독증이라 불릴만큼 남발한 민주당의 수많은 탄핵은 이 대표 사법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정부 흔들기 아니고는 설명이 안된다.
적대시하면서 기묘하게 닮은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상대 체제를 떠받치는 제일 강력한 지지대가 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통령 호위무사를 자처하듯 한남동 시위에 몰려가고 백골단 기자회견까지 여는 작태는 반윤 세력의 반감을 자극해 더 단단히 뭉치게 만든다. 반면 민주당 측에서 “윤석열은 사형선고를 받을 것이다” “총을 맞더라도 체포하라” 등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대통령 도피설’을 공공연히 흘릴수록 반대 진영에 같은 효과를 야기한다.
상대방이 어떤 악수를 두더라도 윤석열 지지율은 10~20%대, 이재명 지지율은 30%대 이상 치고 올라가지 못한다. 판단 유보가 아니라 아예 고개를 돌린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양측 세력은 어떤 경우에도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다. 같은 달력을 쓰지만 시대를 공유하지 않고 같은 국경 안에 있어도 딴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윤석열의 나라와 이재명의 나라다. 대한민국을 다 차지한 듯한 이들의 행태에 많은 국민이 혐오감과 모멸감을 동시에 느낀다.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던 우리 선조의 독립 투쟁이 아무리 처절했어도 동족끼리 벌인 6·25 전쟁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다. 윤 대통령의 변호인이 외신 기자회견에서 현재 한남동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혼란을 ‘내전적 상황’에 빗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도 촛불시위대와 태극기 부대의 대립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강도나 규모를 그때와 비교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탄핵 때나 윤석열 탄핵 때나 똑같이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 들어선다. 나라 밖 세계는 보이지 않는 ‘찐전쟁’ 중인데 우리만 이 지경이다. 이 심각성을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