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 사람은 지혜로운 이성적 동물이다. 호모 파베르 homo faber. 사람은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다. 호모 루덴스 homo ludens. 사람은 놀이를 즐기는 동물이다. 호모 네칸스 homo necans. 사람은 사냥하는 동물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유명한 많은 인간 정의를 남겼다. 그는 ‘정치학’에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사람은 행복을 추구한다고, ‘시학’에서 사람은 세계를 모방한다고, ‘형이상학’에서 사람은 본성적으로 배우고자 한다고 말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도 여기에 인간 정의를 하나 더 보탠다. 그의 ‘의무론’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최고가 되고자 한다.’ 호모 프린키파투스 homo principatus라고 하겠다. 사람은 경쟁과 경합을 통해 자웅을 가려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며 결코 자신이 남들에게 패해 뒤처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여러모로 명백하다. 달리기 권투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전차 등으로 우열을 겨루던 그리스의 체육대회는 기원전 776년에 시작됐고, 이보다 훨씬 더 오랜 기원전 1000년대의 세계를 묘사한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장례식의 일환으로 그리스 영웅들의 경합을 노래한다. 로마의 건국 서사시에서 패망한 나라를 재건할 땅을 찾아 지중해를 떠돌아다니던 아이네아스 일행도 제사를 지내고 나서 편을 나누어 항해의 기량을 겨루었다. 요즘도 세계는 주기적으로 열리는 스포츠 축제에 열광한다. 오늘도 우리 주변의 ‘생활의 달인들’은 최고의 빵을 굽고 있으며, 전국 최고의 빵을 만들었다는 자긍심에 기뻐한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스스로가 남들보다 탁월하고 훌륭한 능력과 힘을 갖추기를 원하고 이를 성취하려고 고통을 무릅쓰고 자신을 단련한다. 나아가 남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 남들보다 더 정의로운 사람, 남들보다 더 용감한 사람이 되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정신적 탁월함에서만 아니라 신체적 우월함에서도 사람은 최고의 능력자가 되기를 원한다.

예를 들어 마라톤 경기에서 패배자가 되어 쓸쓸한 모습으로 경기장을 떠나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는 주자는 없다. 승리를 쟁취해 승자로서 자신의 저력을 만끽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자긍심을 느끼며 남들의 환호를 받는 순간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출발선에 선다.

그래서 사람은 탁월함과 훌륭함을 사랑한다. 사람은 바르고 옳고 정당하고 올곧은 선량한 사람을 원한다.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가르쳐 줄 선생님을 찾는다. 최고의 지혜를 보여준 학자를, 누구보다 용맹했던 군인을, 더없이 정의로웠던 정치가를 사표로 삼는다. 자신이 탁월하고 훌륭한 덕과 업적과 명성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길 희망하며, 그런 사람을 모방하려 하는 것이다. 아니, 그런 사람을 뛰어넘는 더욱 탁월하고 더욱더 훌륭한 지혜와 용기와 절제와 정의를 이루려고 도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무능하고 저열하고 추한 것을 멀리한다. 비뚤어지고 흉하게 일그러진 불의를 질책하며, 불의를 우리 주변에서 쫓아내려고 사력을 다한다. 그릇되고 잘못된 불법 자체를 벌하려는 것만큼, 부정의를 옹호하려는 파렴치한 태도도 어리석은 오만과 광기의 혐의를 물어 제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탐욕과 허영, 무능과 무지, 불성실과 안일함, 우매함과 미망을 칭송하겠다는 ‘우신예찬’은 사실 더없이 신랄하고 준엄하게 악덕을 비난한 풍자였다.

그래서 사람은 정당한 가르침에만 복종하고, 불의·불법적인 명령을 거부한다. 최고의 훌륭함과 탁월함을 추구하기 마련인 사람에게 이는 너무도 당연한 선택이다. 마땅히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행동이다. 불의한 명령을 힘으로 강제하는 폭압을 거부한다. 폭압은 인간의 긍지와 자부심을 짓밟아 파괴하며,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결속과 영속을 산산이 부수고 인간 생존의 토대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사람은 폭압과 폭력에 맞서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기꺼이 포기하기도 한다. 이는 자긍심의 발로다. 사람은 폭압과 독재에 충성함으로써 얻으리라고 기대되는 권력과 재산과 명예 등의 이득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최고의 훌륭함과 탁월함만을 추구하는 초연한 용기를 보여준다.

그래서 사람은 스스로 최고가 되고자 하기 때문에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를 자신의 지도자로 선택한다. 자신이 탁월함과 훌륭함에서 최고라는 긍지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공동체를 이끌어 갈 최고의 지도자를 바란다. ‘인간성 humanitas’과 ‘공공성 communitas’에 이바지하는 시민으로 어울려 살아가는 지도자를, 누구에게도 힘으로 군림하지 않고 누구도 폭압으로 굴종시키지 않는, 때로 통치하고 때로 통치받는 명예로운 평온을 추구하는 지도자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