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대통령 탄핵으로 혼란에 빠진 민생을 챙기기 위해 출범시키려했던 여야정 국정협의회가 답보 상태다. 여야는 지난해 말 협의회 구성에 합의하고 이달 9일 첫 실무협의를 가졌으나 2차 실무협의는 일정조차 못 잡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와 구속 이후 관련 논의는 오히려 후퇴하는 양상이다. 협의회 의제부터 난항이다. 국민의힘은 개헌과 연금개혁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추경 편성이 급하다는 입장이다. 양측은 설 연휴 이전 추가 실무협의 개최를 검토하겠다면서도 절충이나 타협 기미는 아직 없다.

국민의힘 권영세(왼쪽 두번째)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오른쪽) 대표가 최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계류 중인 법안 중에는 여야 큰 이견 없는 민생·경제법안이 40가지가 넘는다.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한 반도체특별법이나 인공지능(AI)법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한시가 급한 이들 법안이 대부분 소관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 여야가 한결같이 민생 중요성을 말하나 진정성은 늘 의심스럽다. 여당이 국정협의회 의제로 주장하는 개헌이나 연금개혁은 단기간 내 어느 한쪽의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특히 연금개혁은 지난해 민주당 양보로 모수개혁에 합의할 뻔했는데 오히려 미적거리면서 개혁 타이밍을 놓친 쪽은 여당이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야당 단독 감액 예산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민주당이 이제 와 추경 편성 시급성에 핏대를 올리는 모습도 의아하긴 마찬가지다.

안 그래도 침체에 허덕이는 민생은 국가 리더십 부재로 한층 심각해졌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이 이어진 지난해 12월 소비자심리지수는 전달보다 무려 12.3% 포인트 떨어진 88.4에 그쳤다. 소비심리가 그만큼 얼어붙었다는 말이다. 이는 최악의 내수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내수 부진은 자영업자들에게 치명상을 안긴다. 그 여파인지 같은 기간 전국 취업자수는 전년 동월 대비 5만 명 이상 감소했다. 직전 달 12만 명 이상 증가와 대조적이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 수입 물가에서 시작된 인플레이션 압력도 높아진다. 급기야 20일 한국은행은 올해 국내총생산(GDP)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1.6~1.7%까지 낮췄다.

국내외에 겹겹이 쌓인 난제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혼자 헤쳐가는 건 불가능하다. 여야 협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국정 공백기 원내 1당의 역할은 여당에 비할 바가 아니다. 조기 대선에 유리한 국면을 선점하기 위한 상대편 발목잡기는 스스로 덫에 걸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건 여당도 마찬가지다. 여야 지지율 추이가 탄핵 이전으로 돌아간 건 결코 국민의힘이 잘해서가 아니다. 여론조사의 함의는 도외시한 채 겉으로 드러난 수치에만 고무돼 초유의 법원 난입 사태 책임 세력을 ‘아스팔트 십자군’ 운운하며 옹호하거나 부추기는 행위는 또 다른 자해일 뿐이다. 정말 민심이 무서운 줄 안다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국민 삶부터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