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보았다면 이를 가리키던 손가락은 잊으라는 ‘견월망지(見月忘指)’라는 말이 있다. 곧 본질에 집중하라는 뜻인데, 요즘 국내에서 화제가 되는 ‘SHIPS for America Act(통칭 미국 선박법)’를 둘러싼 낙관론을 보면, ‘달보다는 손가락만을 보고 있지 않은가’라는 우려가 있다.
세간에서는 이 법안이 시행되면 우리나라 조선산업에 큰 수주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기대한다.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 해군 함정의 유지보수(MRO) 사업이라는 신시장이 우리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널리 퍼졌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LNG선,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친환경선 등 첨단·특수 선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미국이 법안의 초기 이행과정에서는 동맹국인 한국에 대해 협력을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를 놓치면, 이 기대는 본질이 아닌 손가락에만 집중하는 셈이 된다. 우리는 미국이 지향하는 전략적 목표와 변화를 숙고해 보아야 한다.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Alfred Thayer Mahan)의 해양력(Sea Power) 이론을 통해 살펴보면, 미국이 이 법안을 통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머핸의 해양력 이론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는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The Influence of Sea Power upon History)’에서 국가가 강력한 해군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조선·해운 역량, 그리고 광범위한 해상 교역망을 구축할 때 세계적 영향력을 획득하고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세기 말부터 미국은 그의 이론을 적극 받아들여,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거대한 해상 권역을 영향권 안에 두고 해양패권을 추구해 왔다.
미국 선박법 역시 이 같은 배경에서 발의됐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보조금 중단 결정으로 미국의 조선·해운산업은 거듭된 쇠락의 길을 걸었다. 반면, 중국은 세계 최대 조선 강국으로 부상해 상선과 해군을 포함한 ‘해양산업 생태계’ 전반의 장악을 앞두고 있다. 이대로 두면 중국의 해양력이 압도적으로 커지고, 미국이 추구해온 패권국으로서의 전략적 이익이 훼손될 우려가 매우 크다. 이 법안에는 중국의 독주를 견제하고 미국의 해양패권을 재건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내용을 자세히 보면 미국 해양정책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휘·감독과 함께 해양안보 신탁기금을 별도로 신설하는 등 해양산업 재건을 위한 전례 없는 강력한 지원 계획이 다각도로 망라되어 있다.
이렇듯 미국의 본심은 바다에서의 지배력을 확고히 함으로써 글로벌 패권을 유지하는 데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협조 요청은 ‘해양력 강화’를 위해 필요한 역량을 동맹국으로부터 단기적으로 조달하고자 함이 목적이다. 중장기적으로 미국이 독자적인 조선산업 경쟁력을 갖추고, 상선단을 키워낸다면 우리에게는 ‘새로운 경쟁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중국 또한 미국의 움직임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터이니, 세계 조선·해운 시장은 한층 복잡한 판도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국제 정세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해양력은 안보·경제·외교 측면 모두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동맹국에게 의존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미국은 이 법안을 통해 자국의 해양산업·안보·경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해양패권 재건을 위한 미국의 전략적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새로운 각오로 조선·해운업의 미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제도·금융·교육 등 전반적인 사항을 시급히 강화해야 한다.
우선 대통령 직속 해양 비서실을 신설해 흩어진 조선·해운 정책을 총괄해야 한다. 선박 조세 리스와 같은 혁신적인 제도를 과감하게 도입해 조선·해운 미래 경쟁력을 촉진하고, 조선 공제회 신설 등 중소·중견 조선소 금융지원 방안을 확충해야 한다. 부족한 해기사와 조선 기술자 양성계획을 수립하고 해양교육기관 지원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대한민국 해양클러스터 전체의 가치사슬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우리 조선·해운 산업의 신수요 증가로 이어져 주식시장이 빠르게 반응하는 등, 그 반사이익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아지고 있다. 그 기회를 활용함과 동시에 앞으로 닥쳐올 해양패권 재편의 격랑을 이겨낼 수 있는 대비책 마련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