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취임했다. 더 강한 ‘미국 우선주의’를 추구하는 트럼프 2기가 시작됐다. 세계는 ‘트럼프 스톰’ 속에 저마다 살 길을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헌정사 초유의 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리더십 공백 속에 태풍을 맞아야 할 운명에 놓였다. 우리나라에 닥칠 격랑은 ▷전기차 의무화 폐기 ▷무역전쟁 ▷대북 정책 패싱 등이 꼽힌다. 정부가 대책을 세운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고 실행력도 부족해 보여 우려스럽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 워싱턴 캐피널 원 아레나에서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행정명령서에 서명한 후 들어보이고 있다. 이는 취임식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AFP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에너지 해방’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에 많이 매장된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에 힘을 쏟고 그린 에너지 정책인 ‘전기차 의무화’를 폐지하는 내용이다. 전임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의무화 정책 폐기는 당장 한국 자동차·배터리 업계에 타격을 줄 것이다. 다만 구체적 언급이 없어 파급력은 미지수다. 의회 동의가 필요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보다는 전기차 구매와 배터리 생산업체에 지급하는 보조금과 세액공제가 폐지되거나 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 전기차와 배터리 생산 공장을 건설했거나 건설 중인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 등에 비상이 걸렸다. 완성차 수출 감소 예측으로 국내 부품업체도 발등의 불이다. 정부는 내수 촉진 방안 마련을 서둘러야 하겠다.

무역흑자국을 향한 관세 인상은 예상한 바다.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고 우리를 봐주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큰 흑자를 보는 국가와 무역협정을 재검토하라고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했다. 미국 우선주의 무역정책에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상무부에는 무역적자 원인을 조사하고 관세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명령했다. 우리 정부도 바쁘게 움직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안덕근 장관 주재로 대책 회의를 열었다. 통상정책국장을 포함한 실무대표단을 미국에 급파해 미국 측과 소통할 계획이다. 미 행정부 각료 인선이 마무리되는 대로 양국 정부 간 각료급 소통 채널도 가동하기로 했다. 비상수출대책은 다음 달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다음 달 대책을 내놓는 것은 늦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발하기 전에 우리나라 1월(1~20일) 수출은 지난해보다 5.1% 줄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수출마저 16개월 만에 감소라니 걱정이 앞선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 보유국이라고 언급한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핵 보유 세력(nuclear power)’으로 표현했다. “김정은과 매우 우호적이었고 그는 나를 좋아했다. 나도 그를 좋아했고 매우 잘 지냈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는 것인지, 핵 보유라는 사실을 단순히 지칭한 것인지 불확실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인자와 대화하지 않는다고 한다. 탄핵심판이 진행 중이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먼저 만날 가능성이 있다. 정부도 이를 의식한 듯 북한 비핵화를 위해 국제사회와 긴밀히 공조하겠다고 밝혔다. 외교 네트워크를 모두 가동해 북핵 문제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자칫 잘못하면 북핵 협상이 비핵화가 아니라 군축으로 흐를 수 있다.

악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선 산업에 기회가 왔다.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정책 변화로 에너지 운반선 수요 증가가 전망된다. 중국이 따라오지 못하는 LNG운반선 건조에서 수주 호황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전함의 MRO(유지 보수 정비) 분야에서 다른 국가보다 기술적 우위라는 점도 유리하다. 일반 상선 건조에서도 고율관세가 적용될 중국 선박에 비해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우리나라에 러브콜을 보내는 만큼 치밀한 전략으로 침체에 빠진 산업계에 희망의 등대가 돼야 하겠다.

‘트럼프 스톰’의 충격 최소화에 부산시도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다. 수출전문가 팀 구성과 함께 수출기업에 공적자금 투입, 생산비 절감 지원 등은 당장 해야 할 일이다. 부산연구원이 제시한 납품대금 연동제 정착과 유럽시장을 겨냥한 기업의 방위산업 육성도 눈여겨볼 만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준비하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