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국제칼럼] 반민주주의가 극에 달하면

엄동설한 세한이 지난 후 소·잣나무 푸르름 알듯이

법원·헌재 흔들려고 해도 봄이면 국민주권 찾을 듯

  • 최현진 기자 namu@kookje.co.kr
  •  |   입력 : 2025-02-03 18:43:09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설 추위가 지난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알겠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글이다. 살면서 느끼는 이치다. 큰 시련이 닥쳤을 때에야 누가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지 알 수 있다. 공자 당시 ‘백(柏)’은 중국 측백나무를 의미했으나 조선 후기에 와서는 한국 잣나무를 지칭했다고 한다.

세한은 설 무렵 추위다. 일년 중 가장 춥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설경보가 내려질 정도로 엄동설한이었다. 조선후기 추사 김정희 선생이 이 내용으로 ‘세한도’를 남겼다. 정적에게 모함을 당한 그는 지인 상소 덕에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대신 제주도 오지에 위리안치됐다. 가시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형벌이다. 제주 유배 시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제자 이상적만이 위험을 무릅쓰고 방대한 양의 중국 서적을 구해 보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심지어 하우경이 편찬한 120권짜리 ‘황조경세문편’도 있었다. 선생은 고마움을 세한도로 표현했다. 인생 황금기 대부분을 오지에서 유배(3회 12년)로 보냈으니 억울했을 것이다. 유배라는 추위를 겪은 후에야 누가 진정한 자신의 소나무와 잣나무인지 알게 됐다. 제자는 세한도를 들고 중국에 가서 유명한 문인 16명에게서 평가를 받아왔다. 조선 문사 4인의 감상글도 보탰다. 국보 180호가 된 사연이다.

현재 한국 민주주의는 추사가 겪은 세한 못지 않다. 절체절명의 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 경고와 부정선거 규명을 위해 벌인 비상계엄으로 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이 일로 헌정사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대통령은 6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며 항변했다. 현직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내란이 될 수 없다고도 했다. 군 사령관, 경찰청장, 국정원 1차장 등의 증언이나 검찰 조사 내용을 종합하면 6시간짜리가 아니었다. 국회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언론을 검열하며, 의사들을 처단하려고 했다. 계엄이 성공했다면 지금 이 글도 신문에 실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현직 대통령이라도 계엄이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이었다면 내란이다. 내란으로 결론이 나지 않더라도 윤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에 위배되면 탄핵 인용이 불가피하다. 자유민주주의를 외쳤던 대통령에 의해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꼴을 보고 있다.

서울서부지법 난동은 한국 민주주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심사하던 법원에 난입해 집기를 부수고 불까지 질렀다. 폭도들은 영장을 심사하던 부장판사를 찾으러 다녔다. 일부는 판사실에 들어가 중요 문서를 훼손했다. 63명이 이 일로 구속됐다. 하루에 일어난 사건으로 이처럼 많은 사람이 구속되기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을 향한 회피 촉구와 비난 역시 법치를 뒤흔드는 일이다.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측은 법 절차를 밟아 임명된 재판관 흠집내기에 혈안이다. 야당 대표와 친하니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배우자와 동생이 문제라 심판에서 빠져야 한다고 한다. 친북·종북 프레임마저 씌운다. 탄핵을 인용하면 불복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현대민주주의는 법치와 대화로 구현된다. 불만이 있다면 법률에 근거해 자기 주장을 펼쳐야 한다. 특히 폭력으로 이를 실현한다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비상계엄을 발동한 대통령과 법원에서 폭력을 휘두른 무리는 다를 바 없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최근 저서 ‘넥서스’에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3대 자정장치로 법원 언론 대학을 꼽았다. 법원의 자정 기능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독재자는 법원의 권한을 박탈하거나, 그렇지 못할 때는 자기 사람으로 채운다.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 법원이 권력 편을 든 적이 한두 번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 민주주의가 지금까지 유지된 것에 법원이 차지한 몫을 부정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라리는 또 “민주주의는 완벽하지 않다. 대화로 그 오류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화를 싫어하는 자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을 할 때만 해도 국민과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MBC를 핑계로 이를 중단한 대통령은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대화를 거부했다. 사람들과 만날 때 남의 얘기 듣지 않고 혼자 말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그룹을 승계하는 이건희 회장에게 했던 말이 ‘경청’(傾聽)이었다. 그만큼 듣는 게 어렵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은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4월 18일 전에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세한이 지나고 봄이 되면 우리는 누가 민주주의를 푸르게 지켰는지 알게 될 것이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고 했다. 반민주주의가 극에 달하면 다시 주권재민의 민주주의로 돌아갈 것이다. 그게 역사의 법칙이다.

최현진 논설위원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문 前 대통령 거제 생가 복원키로
  2. 2신세계, 센텀 롯데百 인수…쇼핑·문화·관광 복합타운 만든다(종합)
  3. 3[시사난장] 풀숲에 버려진 ‘영도다리의 뼈’
  4. 4“영도 절영초 통폐합 추진 중단하라”
  5. 5“국제신문 살리는 게 지역 민주주의 지키는 일”
  6. 6김해 시내버스 개편…장유 등 23대 증차
  7. 7신세계 야외주차장도 복합개발 속도…센텀 유통지형 요동
  8. 8고리원전에 가짜 베어링 납품 업체들, 1년째 수사 표류
  9. 9팔만대장경 다시 판각…해인사 50년 대장정
  10. 10미분양·빈집 누적…부산 안서도 주택 위기 제각각
  1. 1“영도 절영초 통폐합 추진 중단하라”
  2. 2“능인, 경영능력에 의문” 부산국힘 내주 지원안 머리 맞댄다
  3. 3국힘 부정선거론 다시 띄우기…민주 “선동에 열중” 비난
  4. 4李 비판 유시민에 김민석 “대응 불필요”
  5. 5李 대통령 지지율 1%p 하락 39%…민주 국힘 경합
  6. 6[속보] 장동혁 “투표지 육안으로도 많은 문제…특검, 진실 밝혀야”
  7. 7靑 “DMZ 지뢰폭발 사건 북한의 사과와 조치 요구”
  8. 8송파 247만 장 검증, 신분확인·촬영요구로 시작부터 차질(종합)
  9. 9국민의힘 곽규택 의원 등 동구 주요 당직자, 북항 돔구장 정부 공모 참여 환영
  10. 10대한항공 말흐리기…실체없는 통합LCC 부산 허브
  1. 1신세계, 센텀 롯데百 인수…쇼핑·문화·관광 복합타운 만든다(종합)
  2. 2신세계 야외주차장도 복합개발 속도…센텀 유통지형 요동
  3. 3미분양·빈집 누적…부산 안서도 주택 위기 제각각
  4. 4행사 한창인데 벡스코 정전…전력관리체계 도마(종합)
  5. 5부산시, 쿠팡 등 3곳 1630억 투자 유치
  6. 6삼성전자 분기 영업익 107조 역대 최대…반도체로만 106조(종합)
  7. 7롯데, 영도대교 복원 인연 축제로 잇는다
  8. 8AI드론으로 참치 찾는 선박 부산 출항
  9. 9‘덕후 천국’ 부산에 떴다…롯데百 전국 첫 IP 전문관
  10. 10가계대출 금리 5% 턱밑…고정형 주담대 사상 첫 5% 뚫어
  1. 1문 前 대통령 거제 생가 복원키로
  2. 2“국제신문 살리는 게 지역 민주주의 지키는 일”
  3. 3김해 시내버스 개편…장유 등 23대 증차
  4. 4고리원전에 가짜 베어링 납품 업체들, 1년째 수사 표류
  5. 5팔만대장경 다시 판각…해인사 50년 대장정
  6. 6기말고사에 EBS 유사 문항, 처음 아니었다
  7. 7착취 당한 男 장애인 구조해도…부산엔 임시거처조차 없다
  8. 8검증 체계 없는 유가보조금…줄줄 샌다
  9. 9국회 복지위 ‘침례병원 정상화’ 정부 결단 촉구
  10. 10본사 비대위·퇴직자, 지광 고소…실질경영자에 ‘체불 책임’ 추궁
  1. 1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2. 2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3. 3“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4. 4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5. 5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6. 6모레노, 은퇴소동 ‘96라인’ 달랜다…대표팀 내홍 풀까
  7. 7부산시대 2년차 읏맨 “홈팬 응원에 성적으로 보답”
  8. 8밀워키, 창단 58년 만에 WS 우승…5차전서 4-1로 탬파베이 제압
  9. 9경남 생활체육 대축전 30일 개막…3일간 31개 종목 열전
  10. 10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진짜 질문의 시작
국제칼럼 [전체보기]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부산 관광, 마냥 좋기만 할까
기고 [전체보기]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클릭으로 여는 독도
지긋지긋한 론스타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국회 출석 거부하며 장외 사실호도 일삼는 지광
AI 해킹 범죄 고도화…수사 공백 해소 시급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반복된 일상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법
한국 경제 떠받치는 중장년, 이제 다시 봐야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