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 ‘기억의 장소’로 유명한 프랑스 역사가 피에르 노라는 이렇게 말한다. “기억과 역사는 동의어이기는커녕 정반대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야 깨닫는다”고…. 여기서 역사는 ‘만들어지는’ 기억과 ‘강요되는’ 망각 사이의 끝없는 투쟁이다. ‘기억투쟁’이다. 기억투쟁은 망각에 맞서 기억을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더욱이 대한민국에서 ‘기억’은 시사적이며, 정치적이다. 진정한 ‘기억의 진실’은 지배이데올로기의 ‘관제기억’ 또는 ‘공식기억’에 도전하는 ‘대항기억’으로 정치화된다. 이를 토대로 ‘기억’ 속의 우리나라 대통령 권한대행을 호출한다.
첫 번째 대통령 권한대행은 허정 과도정부 수반이다. 허정 권한대행은 1960년 4월 27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이후 제2공화국 성립 때(6월 15일)까지 수석국무위원 겸 외무부장관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허 권한대행은 4·19혁명 이후 이 대통령에 하야를 권고하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으면서 ‘혁명적 목표를 비혁명적 방법으로 수행한다’고 시정방침을 발표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는 적어도 자신에 주어진 책무를 회피하지 않았다. 다음은 ‘서울의 봄’(1979년 10월 26일∼1980년 5월 17일) 당시 최규하 대통령이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로 권한대행이 됐고, 1979년 12월 6일 간선제 대통령이 된 뒤 엿새 만에 12·12 군사반란을 맞았다. 최 대통령은 12·12 군사반란 당일 밤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재가를 받으려고 하자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다만, 국방장관의 승인을 받아오라며 시간만 흘려보냈다. 이는 영화 ‘서울의 봄’(2023)에서도 ‘재생’된다. 최 대통령은 신군부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광주의 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에 나섰는데도 이를 지켜만 봤다. 그가 당시 광주에 가서 유일하게 한 일은 “일시적 흥분으로 총을 든 시민은 총기를 반환하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담화문을 낸 게 전부였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그간 ‘권한대행 기억’은 익히 아는 바이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띄는 게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인 허정 권한대행과는 달리 최규하 전 대통령과 한덕수·최상목 권한대행은 모두 ‘정통 관료’ 출신이다. 유체이탈 화법이나 책임 회피 또는 방관, 권한과 의무의 불일치 등은 닮은꼴이다. 이러한 정체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최근 출간된 책 속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노한동 지음·사이드웨이)이 바로 그것이다. 책의 부제는 ‘한국 공직사회는 왜 그토록 무능해졌는가’이다. 공직사회와 공무원에 관한 폭탄과 같은 책이다. 저자는 행정고시를 통해 10년간 공직생활을 하다가 스스로 그만둔 서기관 출신이다. 책에는 ‘갑과 을의 두 얼굴’이 나온다. 평소에는 법과 제도가 준 권한과 직위로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갑’의 얼굴을 하지만, 정말 일해야 할 때는 정권과 국회, 여론의 뒤에 숨어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는 ‘을’의 얼굴이라고 한다.
이러한 책의 내용은 한덕수·최상목 ‘전·현직’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와 오버랩 된다. 또 책에서 언급한 ‘권한과 의무의 불일치’를 떠올리게 한다. 이 일로 한 총리는 탄핵심판을 받게 됐다. 최 권한대행은 여야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 중 2명만 임명하고 한 명은 보류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의 재판관 선출권과 헌법재판소 구성권이 침해당했다며 권한쟁의심판을 냈다. 헌재는 지난 3일로 예정된 권한쟁의심판의 선고를 일단 미루고 변론을 재개한다.
최 권한대행은 ‘신기록 보유자’이다. 그는 지난달 31일 두 번째 ‘내란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그가 권한대행을 맡은 사이 법률에 거부권을 행사한 횟수는 모두 7회다. 지난해 12월 31일(첫 번째 내란 특검법) 이후 한 달간 작성한 ‘기록’이다. 윤석열 대통령(25회)과는 비교가 되지 않겠으나, 이미 한 총리의 권한대행 재임 시 기록(6회)을 넘어섰다. ‘거부권 7회’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로 따지면 노태우 전 대통령과 동률이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해당 기록은 재임 5년간 작성된 것이다.
다시 피에르 노라의 말을 떠올린다. “기억은 삶이고, 언제나 살아 있는 집단에 의해 생겨나고 그런 이유로 영원히 진화되어가며, 의식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왜곡되며, 활용되거나 조작되기 쉽고, 오랫동안 잠자고 있다가 갑자기 회복되기도 한다.” 그래서 기억은 과거형이자 현재형이며, 미래형이다. 최 권한대행은 어떻게 ‘기억’되겠는가. 그 ‘기억’에는 사법기관(서울서부지법)이 침탈당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 당시 최 권한대행이 8시간이나 지나서야 입장을 낸 것도 포함됐다.
오광수 편집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