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소설 ‘야간비행’은 아름다운 풍경 묘사로 시작된다. 남쪽 끝 파타고니아에서 날아오른 비행기는 황금빛 노을을 지나 깊은 밤으로 들어선다. 비행사 파비앵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하늘을 가로지르며 “밤이 인간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새어나오는 전등 불빛을 통해 이름 모를 가족이 모여 앉은 식탁의 풍경을 상상한다. 그렇게 일상의 불빛은, 일상과 가장 멀리 떨어진 비행사가 자신이 돌아갈 곳을 그려내는 별자리가 된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에서 발견한 구조 신호처럼.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30년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일은 필연적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개척되지 않은 항로와 부족한 비행기 연료도 문제였지만, 관측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언제 비바람과 뇌우를 만날 지 알 수 없었다. 한번 떠오른 비행기는 오로지 비행사의 직감과 역량에 의존해 대륙과 대륙 사이를 오간다.

하지만 그들이 비행을 마치고 격납고에 발을 내디뎠을 때, 예측할 수 없는 모험의 흔적은 점차 옅어진다. 임기응변과 탁월한 직감 대신 엄격하고 예외 없는 회사의 규칙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항공사 책임자 리비에르는 비행사와는 다른 세계를 짊어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태풍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복귀한 비행사에게 무리한 운전을 했다고 질책한다. 엔진에서 불길한 진동을 느꼈다는 항변에도, 사후 점검에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대화를 일축한다.

리비에르는 원칙을 강조하며 회사를 관리하는데, 그 모습이 상당히 냉혹하다. 자연재해로 인한 출항 지연에도 페널티를 주거나, 비행기 점검 실수를 한 늙은 정비사를 가차 없이 해고한다. “저는 평생을 바쳐 이 일을 해왔습니다!”라는 절규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하지만 리비에르는 자존심과 편의를 위해 행동하던 원칙주의자들과는 다른 면모가 있다. 그는 오랫동안 같은 일을 해왔음에도 매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정당한가? 이건 정말로 옳은 일인가? 명확한 답을 내리지는 못하지만, 리비에르는 언제나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내가 엄격하게 굴면 사고는 줄어든다. (…) 내가 정당하게 군다면, 야간비행은 매번 죽음의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리비에르는 자신이 짊어진 세계를 이해한다. 하지만 그 세계의 한계 또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 파비앵 부인과의 대면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오던 비행기가 뇌우를 만나 통신이 두절되자, 남편의 복귀를 기다리던 파비앵 부인은 사무실로 찾아온다. 그녀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채 책임자인 리비에르와 마주한다. 실종된 비행사의 아내와, 위험한 야간비행을 강력히 주장하고 실행했던 회사 중책의 만남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저 둘은 금방이라도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지를 것만 같다. 각자의 사정만을 이야기하다, 결국 상대방을 비난하고 모욕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야간비행’은 우리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들은 서로를 비난하지 않는다. 파비앵 부인은 직원들을 모욕하지 않고, 리비에르는 파비앵 부인을 성가신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가 다른 세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이해한다. 심지어 리비에르는 남편의 복귀를 바라는 파비앵 부인의 요구가 ‘옳다’고 생각한다. 항상 자신의 정당성을 의심하던 그가 타인의 진실 앞에선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제야 대립하듯 보였던 인물들이, 보이지 않던 각각의 세계를 짊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광활한 어둠을 가로지르는 비행사들의 용기도, 엄격한 규칙으로 통제되는 회사도, 따뜻한 식사와 커피가 준비된 작은 식탁의 불빛도, 서로를 위한 별자리가 되어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야간비행’ 출간 후 100여 년이 지난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세계가 점점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 나라의 책임자가 제멋대로 규칙을 어기더니,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 사람들을 막막한 어둠으로 밀어 넣는다. 원칙이 없으니 소문만 무성하다. 결국 식탁의 불빛은 거리로 나와 스스로 별자리를 만든다. 그럴 때마다 “밤이 인간을 보여준다”는 소설 속 문장이 떠오른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에서 발견한 구조 신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