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긴장을 풀지 못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일과를 끝내고 집에 귀가해서 잠자리에 누우면 저절로 잠이 올 것을 기대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평소의 긴장이 풀리지 않은 채로 잠이 들면 어깨와 목이 더 결리고 아프기도 한데다 지나치게 턱을 꽉 다물어 통증이 있기도 하다.

잠이 온다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의외로 여러 요소가 맞물려 일어난다. 세 가지로 설명하자면 첫째는 낮 동안의 피로 누적이다. 둘째는 각성도의 감소, 셋째는 멜라토닌 분비의 증가이다. 낮에 외부에서 활동을 많이 하고 집에 돌아와서 씻고 편안하고 어두운 조명 아래 명상하거나 잠시 책을 읽다가 잠자리에 드는 패턴이다. 매우 단순하고 유지되기 쉬워 보인다. 하지만 현대인의 생활은 이 세 가지에 방해 요소가 이미 심하게 노출되어 있다.

방해 요소 첫 번째는 낮 동안의 피로가 누적되어 졸려야 하는데 수시로 마시는 커피나 카페인으로 뇌가 이 피로를 느끼지 못한다. 몸을 많이 움직이거나 정신적으로 몰두했을 때 뇌에서는 아데노신이라고 하는 피로 물질이 누적된다. 한계치에 다다르면 저절로 하품이 나고 졸리면서 잠에 빠져드는데 카페인은 이 아데노신이 뇌에 작용하지 못하도록 한다. 피로를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인데 느끼지 못할 뿐 피로가 풀리지는 않는다. 카페인이 아데노신을 없애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후에 커피를 마시고 밤에 잠이 오지 않는 것은 이 이유다. 쉬지 못했으니 피로한 건 당연한데 더 생산적인 일을 해내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많은 사람이 커피를 물처럼 들이킨다.

두 번째 요소인 각성도는 밝은 불빛 아래서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과중한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바로 잠들기 아깝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그래서 지치고 힘든 뇌는 도파민을 추구하게 되고 효율적으로 단시간에 즐거움을 가져오는 방법을 찾는다. 바로 게임을 하거나 영상물을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눈으로 밝은 불빛이 들어오면 뇌는 각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나고 재밌는 영화나 드라마에 빠져들다 보면 밤을 새우기도 한다.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뇌를 각성하게 하지 쉬게 하지 않는다.

세 번째 멜라토닌은 이 각성도와도 연관되어 있다. 멜라토닌은 깜깜해지는 밤에 분비되기 시작한다. “지금이 밤 9시야 뇌야 멜라토닌을 분비해!” 이렇게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자연스레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이 줄 때 멜라토닌 분비는 상승곡선을 타는 것이다. 그런데 쉬어야 하는 저녁시간에 밝은 조명 아래 과격한 운동을 하거나 재미있거나 자극적인 영상물을 보게 되면 잠이 달아난다.

과거에는 낮에 나가서 누군가와 다투더라도 귀가하면 잊고 지낼 수 있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자극을 안전하게 차단해 주었던 셈이다. 그런데 지금은 원치 않아도 수시로 누군가와 연결되고 있다. SNS나 이메일의 보이지 않는 사회연결망 속에서 우리는 24시간 소환된다. ‘보지 않으면 되지, 앱을 지우면 되지’ 라고 말하지만 그게 절대 쉽지 않다. 놓는 순간 소외될 것 같고 외로워질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하루의 긴장이 밤까지 이어지고 각종 통증에 시달리신 분이 내원하셨다. 오늘은 좀 밝은 표정이다. “선생님 제가 얼마 전 여행을 다녀왔는데 이상하게 여행만 가면 마음이 그렇게 편해요. 또 가고 싶다니까요!” 공간을 벗어나면 모든 것이 초기화되는 것이다. 공간이 주는 특유의 힘이 있다. 복잡한 곳이나 일상의 염려를 떠올리게 되는 곳에서 마음을 놓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필자의 경우 기차역이나 공항에 가면 너무 마음이 느긋해진다. 역사나 공항의 높은 층고나 확 트인 공간에서 일상을 잊을 수 있고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사람들 표정에서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다. 그중 가장 큰 요소는 핸드폰을 잠깐이라도 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상의 긴장 스위치도 과감히 끌 수 있어야 한다. 그곳이 꼭 멀고 대단한 장소일 필요는 없다. 가급적이면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곳이 아니면 좋다. 평소에 가보지 않았던 도서관이나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공원을 찾아보면 어떨까? 현재의 공간과는 다른 나만의 아늑한 휴식처를 지금이라도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