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뉴스와 현장] 명함을 자르며

  • 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
  •  |   입력 : 2025-03-05 18:36:23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3월은 봄과 꽃이 생각나는 시간이다. 하지만 여전히 찬 바람이 불기도 하는 때다. 아무리 봄이라도 향기와 온기만이 가득한 시절이 있으랴. 겨울이 혹독하게 추워도 봄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 예상치 못한 찬 바람이나 서리가 내려도 얼음은 녹기 마련이고 훈풍은 불어오며 계절은 바뀐다. 그게 정해진 이치다.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려면 묵은 먼지를 쓸어내고 서랍을 비워야 한다. 우선 회사 서랍부터 열어보니 지난 부서에서 썼던 내 명함이 몇 박스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버릴 것들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명함은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버리기가 쉽지 않다. 개인 정보가 너무 많이 적혀 있어 싹 모아서 태워버리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깔끔해 전에는 캠핑을 가는 이에게 부탁해서 불쏘시개로 태워버렸다. 요즘은 부탁할 지인이 없어서 명함이 쌓였다. 처리할 마음이 났을 때 없애고 싶었다.

태우는 것 다음으로는 문서 세단기에 넣는 것처럼 조각내는 방법이 있다. 손으로 찢자니 코팅된 종이라 잘되지 않았다. 성질도 버리고 손가락까지 같이 아플 것 같아 가위를 들었다. 이름과 연락처를 잘 알아보지 못하게 그 부분부터 가위질한다. 싹둑싹둑 소리가 시원하다. 내 이름을 자르면서 내 안의 쓸모없는 부분을 없애는 것 같은 착각에 속이 시원해진다. 그전에는 나를 나타냈던 작은 종이가 가위질 몇 번에 조각난 쓰레기가 됐다.

참으로 간단하고 쉬운데 왜 진작 이렇게 못했을까. 그깟 종이가 뭐라고. 그 종이와 나를 지나치게 연결할 필요가 없었다. 종이가 나를 나로 규정해 주는 것이 아닌데 어리석게도 그런 줄 알고 살았다. 다른 이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명함이 주는 건 그 사람에 대한 작은 정보고 나중에 누구였나 기억이 안 날 때 도와주는 메모일 뿐이다. 몇 년 전에 받은 명함 속 사람은 이미 그 자리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랍 속 묵은 내 명함을 손가락이 아픈지도 모르고 모조리 잘랐다. 가위 손잡이에 눌린 손가락에 빨간 자국이 생길 정도였다. 쓰레기통에 종이 쪼가리가 가득하다. 웃음이 났다. 이래서 버려야 한다고 하는구나. 허전해진 서랍도 시원해 보였다. 의미 있다고 생각한 걸로 채웠던 곳에 공간이 생겼다. 숨 쉴 자리가 생긴 것 같아 영 시원했다.

정리정돈의 기본은 우선 버리는 것부터 라더니 그 말이 맞았다. 전에 대학 때부터 입던 옷도 버리지 못해 가득 걸려있던 행어가 무너진 일이 생각났다. 자려고 누웠는데 옷방에서 갑자기 뭐가 다 무너지고 쏟아지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혼자 집에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난 소음에 무서운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심호흡을 하고 한 손엔 휴대전화를 쥐고 한 손으로 조심스레 옷방 문을 열었더니 안이 엉망진창이었다.

2단으로 만들어진 철제 행어 가운데가 뚝 부러져 아래에 걸린 옷까지 다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내 참. 옷이 얼마나 무거웠으면 조립식 행어가 무너진건지. 결국 오래된 옷을 다 솎아내 버려야 했다. 혼자서 치우는 건 엄두가 안 났지만 그래도 수습은 해야 하니 늦게까지 못 자고 옷 먼지에 콜록대며 버릴 옷을 꺼냈다. 뒤지다 보니 이건 뭐 일 년에 한 번 입을까 말까 한 옷에 이건 무슨 생각으로 산 걸까 하는 옷, 대학 때부터 입어서 무척 좋아했지만 소매 끝이 나달나달해진 옷이 그득했다. 버릴 것만 따로 쌓아도 허리 높이가 넘었다. 옷을 좋아해서 많이 사기도 했지만 적절한 때 버리지 못해서 일어난 난리였다.

전에 정리전문가를 만나 들은 말이 그제서야 생각났다. “뭐든 하나를 사고 싶으면 집에 있는 걸 하나 버려야 합니다. 공간은 한정적이니까요. 물건에게도 자신의 자리를 마련해 주세요. 자기 자리를 찾으면 정리정돈이 힘들지 않아요”. 현대인은 너무 많은 물건 속에서 산다고들 한다. 지금부터라도 미적거리지 않고 현명하게 버리고 버려서 알갱이만 가질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생겼으면 좋겠다.

최영지 독자여론팀장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2. 2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3. 3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4. 4“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5. 5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6. 6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7. 76일 부산국제영화제 팡파르…사상 첫 화요일 개막
  8. 8“내가 국회의원 당선시켜” 사하구체육회장 정치개입 정조준
  9. 9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10. 10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6일
  1. 1연일 노무현 때리는 한동훈, 박정희 띄우는 주진우…檢 출신들 속내는
  2. 2‘맹탕 청문’ 의식 부산시의회, 교통·시설公 송곳검증 벼른다
  3. 3부울경 펀드인데 절반가량은 수도권 투자…제도취지 무색
  4. 4軍 “北 지뢰 터져 장병 부상” 결론…군사분계선 이남 제거작전 돌입(종합)
  5. 5장동혁, 육영수 생가 방문…‘암살자(들)’로 진보 맹공
  6. 6"'국가전산망 먹통' 국정자원 화재로 소실된 데이터 완전복구 안돼"
  7. 7부산 영도 출신 이언주 의원, 부산·울산서 '공짜 질서는 끝났다' 북콘서트 개최
  8. 8부산·울산 국감 쟁점 된 전재수·김상욱…野 파상공세 태세
  9. 9부산시의회 찾은 4선 김도읍, 생곡 소각장 반대 논리 읍소
  10. 10[속보] 李 대통령 지지율 37.4%.. 민주 42.5%, 국힘 38.4%
  1. 1부산 아파트 매매 침체일로…해운대·수영·동래만 웃었다
  2. 2지역상품 우선구매 ‘부산이 삽니다’ 민간 확산 드라이브
  3. 3해킹 피해 신한은행 2만5727건 vs 우리·농협 0건…금융기관 ‘보안 체력’이 갈랐다
  4. 4증권·산업계도 AI 해킹 포비아…휴일 반납 하고 긴급 점검
  5. 5누리호 7일 발사 앞두고 6일 기립(종합)
  6. 6“북항 더 핫하게” 시민과 명소화 모색
  7. 7기업 보유 토지 공시지가 공시 의무화…‘땅부자’ 상장사 수면 위로
  8. 8[한 손 뉴스] 양양 송이 ㎏당 171만 원…생산량 줄어 역대 최고가
  9. 9SNS레시피가 제품으로…농심 스낵 ‘너구링’ 선봬
  10. 10어선원 직불금, 60일 승선하면 받는다
  1. 1다 쓰지도 못하는데…어르신 품위유지비 늘린 중구
  2. 2기장군수실 1층 이전 놓고 직원 반대 우세
  3. 3양산 구불구불 새미기고개 대체길 뚫리나
  4. 4“정체성 부재” 비판 많은 ‘부산이즈굿(Busan is Good)’ 손본다
  5. 5“내가 국회의원 당선시켜” 사하구체육회장 정치개입 정조준
  6. 6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6일
  7. 73년 표류 창원 제2국가산단…LH 사업비 낮추나
  8. 8김해시의원 활동비는 1만 원 깎였다
  9. 9출소 한 달 만에 또…유치장 난동 40대 징역형
  10. 10“디지털농업·특화브랜드로 청년농부 유입 이끌 것”
  1. 1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2. 2“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3. 3불안한 모레노호 우즈벡전 반등할까
  4. 4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5. 5공은 웃었고 활은 울었다…경기운영·숙소는 빵점 대회
  6. 6작은 체격·부상 딛고 金 “LA올림픽서 그랜드슬램 이룰 것”
  7. 7“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8. 8AG 4연패 위업 축구 대표팀, 병역 관련 언행 논란
  9. 9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한국 선수단 폐회식 기수
  10. 10‘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국제칼럼 [전체보기]
누구도 법 앞에 국민보다 ‘더 평등’할 수 없다
배지의 실력행사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논란의 AG
상표권 알박기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중수청·공소청 혼란 땐 수정 보완 주저 말아야
북 미사일 위협 속 ‘빈총 경계’ 안보 불안 키워선 안 된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드골 대통령과 군복
청년기본법, 청년친화도시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무(武)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