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전인 1945년 2월 4일 흑해 연안 크림반도 얄타에서 미국(루스벨트) 영국(처칠) 소련(스탈린) 세 강대국 정상회담이 열렸다. 얄타회담으로 불리는 이 자리에서 독일의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했으며, 미국은 소련에게서 대일본 전쟁 참전을 약속받았다. 결과적으로 일제 패망 이후 한반도가 38선을 경계로 미소 양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는 계기가 됐다. 한국 독립 문제를 논의했지만 한국은 배제된 채 강대국들 ‘약소국 땅 나눠먹기’로 결론이 난 것이다.
지난달 24일로 발발 3년을 맞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 과정에서 또다시 강대국 간 땅(자원) 나눠먹기가 진행 중이다. 종전 협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장으로 분수령을 맞았지만, 미러는 전쟁 당사국이자 피해자인 우크라이나를 빼고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고위급 회담을 열었다. 트럼프는 러시아군 철수 및 우크라이나 영토 보전 등을 합의한 UN총회 결의안은 러시아와 함께 반대하면서,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에 점령당한 영토 포기와 각종 원조 대가로 5000억 달러(약 726조 원) 가치의 희토류를 요구했다.
클라이막스는 지난달 28일 파국으로 끝난 트럼프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백악관 정상 회담. 러우 전쟁 종결의 선제 조건으로 ‘안전 보장’을 요구한 젤렌스키에게 트럼프는 “당신은 아무런 카드가 없다”며 수모를 줘 쫓아내다시피 했다. 언쟁을 벌였던 젤렌스키는 트럼프의 군사원조 중단이라는 초강수에 백기투항을 했다. 이익 앞에서는 적성국과 거침없이 밀착하고 동맹국엔 ‘철퇴’를 내리는 트럼프식 외교 전략이다. 이를 두고 이문영 서울대 교수는 한 방송에서 “우아한 위선의 시대가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평가했다.
‘돈 안 되는’ 동맹국 정상에게 모욕을 퍼붓는 회담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우려스럽다. 트럼프라면 러우 전쟁 종결 후 한국을 패싱하고 북러와 협상, 한반도 안전을 위협할 수 있어서다. 트럼프의 표적도 한국으로 향하는 모양새다. 지난 4일 트럼프는 집권 2기 첫 의회 합동연설에서 한국을 콕 찍어 “평균 관세율이 (미국보다) 4배 높다”며 관세 폭탄 투하 가능성을 내비쳤다. 특히 미국의 군사 지원을 관세 문제와 연계, 주한미군 주둔 등을 볼모로 거액 청구서를 디밀 것임을 예고했다.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madman theory)이 칼춤을 춘다. 탄핵정국에 따른 리더십 부재와 유례 없는 국론 분열로 우왕좌왕하는 우리는 어떤 카드를 가지고 있나.
임은정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