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으나 역시나다. 지난 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형준 부산시장 만남은 뒷맛이 쓰다. 이 대표는 북극항로 개척이란 새 화두를 들고 부산신항을 방문했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에 따른 조기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둔 부산 표심 안기다. 박 시장이 이 대표를 찾아간 이유는 분명하다. 부산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제정과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위한 산은법 개정을 위해서다. 국회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민주당이 협조해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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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일 부산 강서구 부산신항홍보관에서 북극항로 개척의 의미와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windstorm@kookje.co.kr |
혹시나는 대선 주자라면 부산 표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으니 이 대표가 전향적인 태도를 취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두 사안에 냉담했다. 글로벌허브법은 부산 손을 들어줄 경우 다른 시·도도 비슷한 요구를 할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른바 형평성 논리다. 산업은행 본사를 서울에 둔다는 문구를 부산시에 둔다로 바꿔야 하는 산은법 개정은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공공기관 2차 이전 논의 및 노조 반대 등 표면적인 이유와 함께 지역구 이해관계가 얽힌 김민석 의원이 버티고 있다. 집토끼는 양보할 수 없다는 심산이다. 역시나 하는 결과는 그래서 나왔다. 이 대표에게 두 가지는 관심 밖이었다.
뒷맛이 쓴 이유는 따로 있다. 우선 ‘북극항로 개척’이 정쟁 불쏘시개로 치부될까 걱정이 앞선다. 이 대표는 지난달 10일 국회 교섭단체대표연설에서 이를 공식화했다. “동남권 발전의 발판이 될 북극항로에 긴 안목으로 관심을 가지고 준비할 때”라는 취지다. 대선 공약에 버금간다는 해석이 나온 연설이었다. 부산에선 모두가 함께 잘 살자는 ‘잘사니즘’보다 관심을 끈 이슈였다. 이 대표에겐 험지로 꼽히는 부산을 향한 구애의 메시지로 해석된다. 앞서 이 대표는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이를 언급했다.
물류비용 절감과 자원확보 차원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북극항로다. 우리나라도 2013년 시험 운항을 시작으로 10년 이상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부산은 북극항로 허브도시를 목표로 북극항로 개척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을 준비할 만큼 잰걸음이다. 부산시 ‘부산 북극항로 개척 TF’ 발족과 극지해양미래포럼 ‘북극항로 기획위원회’ 가동이 그 예다. 이 대표가 이슈화하는 건 고맙고 다행스럽다. 정치권이 힘을 합쳐 관련 특별법이 만들어진다면 북극항로 개척은 순풍에 돛단 듯 질주할 동력이다. 분명한 건 ‘이재명표 작품’이 아니라 ‘부산 미래’여야 한다는 점이다. 국회 다수당을 어느 당이 차지하든,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든 역풍에 시달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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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6일 부산 부산신항홍보관에서 박형준 부산시장과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날 북극항로 개척과 부산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제정 등 현안을 두고 논의했으나 접점을 찾지는 못했다. 이원준 기자windstorm@kookje.co.kr |
다른 하나는 더 불투명해진 글로벌허브법과 산은 이전 전망이다. 두 사람은 시급한 일, 중요한 일, 시급하고 중요한 일 논쟁을 벌이며 부산 홀대론이 더 커졌다. 박 시장은 시급한 문제와 중요한 문제,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나눴다. 북극항로는 중요한 문제이고 글로벌허브특별법과 산은 부산 이전은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북극항로가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라고 맞받았다. 박 시장 입장에선 국회의 벽을 재확인했고, 이 대표로서도 대선 전략에 결코 도움이 될 수 없는 모양새다.
대선엔 시대정신이 담긴다. 미래를 위한 선택인 까닭이다. 큰 정치가 그래서 필요하다. 맹자 말을 빌자면 정치에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발휘하는 것이다. 지방분권과 양극화 해소는 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이 편안하게 사는 지름길이다. 이를 위해선 표를 줄 사람 말을 잘 듣고 왜 그런 말을 할까 헤아리는 게 우선인데 이 대표는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자리를 떴다. 애초부터 북극항로 개척을 중심으로 논의하기로 합의된 자리라고 선을 긋는다고 해서 시민이 납득하리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지금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다. 12·3비상계엄 사태는 호수에 비친 그림자처럼 아무일 없다는 듯이 지나갈 사안이 아니다. 헌정 질서 도전이자 국민 배반 행위다. 조기 대선이 코앞이라고 여기는 논리다. 그럴수록 마음이 급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큰 정치를 하겠다면 오히려 차근차근 국민 마음을 얻어가야 한다. 호연지기의 다른 한 축이 말을 아는 것, 지언(知言)이라고 했다. 하고 싶은 말보다는 들어야 할 말을 우선해야 한다. 이 대표 부산 방문이 이번으로 끝날리 없고, 박 시장과도 머리를 맞댈 기회가 생길 수 있다. 하고 싶은 말만 하면 하수이고 듣고 이해시켜야 상수다. 세상 이치가 그렇다.
이 시급하고 중요한 일에 부산이라고 다를 바 없다. 부산은 글로벌허브법이나 산은 이전이 더해져야 할 만큼 상황이 나쁘다. 위기와 악재의 중첩이자 일극체제의 폐해로 인한 겹고통이다. 해결책 중 글로벌허브법과 산은 이전이 첫손에 꼽힌다. 큰 정치에 나서는 건 정치인 마음이지만 그 가운데서 인물을 가려 뽑는 건 부산 시민이다.
정상도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