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올린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국내 언론 취재에 답변하면서다. 주무 부서인 미국 에너지부는 “이전 정부가 2025년 1월 초 한국을 SCL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 국가’에 추가했다”고 공식화 했다. 민감국가는 국가 안보, 핵 비확산, 테러 지원, 지역 불안정 등 여러 정책적 이유로 특별한 고려가 필요한 국가를 뜻한다. 미국 에너지부는 “SCL 지정으로 한미간 과학 기술 협력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선을 긋긴 했으나 파장은 일파만파다. 하필 한미 관계가 한층 긴밀해졌다고 평가받는 바이든 정부 말기에 이런 조치가 나온 이유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새로운 SCL 리스트는 다음달 15일께 확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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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15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윤석열(맨 왼쪽) 대통령이 조 바이든(맨 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민감국가 지정 의미는 리스트에 있는 25개국 면면을 보면 더 확실해진다. 우선 미국이 테러리스트 국가로 분류한 북한 이란 쿠바 리비아 수단 시리아 등이 올라있다. 미국의 동맹국 중에선 이스라엘과 대만이 포함돼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내막은 한국과 다르다. 이스라엘은 사실상 핵보유국이라는 지위와 중동의 지정학적 특이성이 있고, 대만은 중국에 대항해 핵개발을 실제 시도했다. 한국은 최근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권의 핵무장론, 계엄과 탄핵에 의한 정국 불안정,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원전 수출 경쟁 등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이번 리스트가 확정되면 한국은 최소한 미국 에너지부 차원에서는 북한과 동일 선상에서 취급당하는 나라가 된다.
한국이 SCL에 올랐다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건 우리 정부의 대응이다. 이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10일 언론사 보도를 통해서다. 바로 다음날 국회에 출석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라고 답했다. 지난 주말 미국 에너지부의 공식 확인 전까지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인지하지 못했다는 결론밖에 안된다. 국가 이익 앞에서 동맹을 다소 경시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아니라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런 결정이 내려졌는데도 두달 넘게 깜깜이였다는 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권력 공백기 기강해이의 도가 넘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아직은 미국이 한국 과학기술 교류협력의 중심이고, 에너지부 산하 17개 국립연구소는 그 핵심이다. 이를 통해 국내 여러 연구기관이 인공지능(AI), 원자력, 양자 등 각종 첨단과학 연구를 협력 수행 중이다. SCL에 오르면 연구자들이 한국에서 미국, 혹은 미국에서 한국을 방문할 때 엄격한 인증 절차를 거치게 되어 있다. 인적 교류, 공동 연구, 프로젝트 참여에 유무형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는 무차별 관세, 북한에는 핵보유국이라는 칭호를 안기며 전통적 한미동맹의 틀을 흔들고 있다. 정부는 미국이 한국을 SCL에 등재한 정확한 배경을 파악하는 한편 다음달 발효 이전 리스트 제외를 위해 외교적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