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의 건강 문제에 전 세계가 주목했다. 교황은 14억 가톨릭 신자의 ‘영적 지도자’이며, 살아있는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런 교황께서도 신도에게 화를 낸 적이 있는데, 한 성도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와 “내 아기를 축복해주세요”라고 말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교황은 “많은 어린이가 굶주리고 있는데 나에게 개를 축복해달라고 데려왔느냐”고 버럭 화를 냈고, 아이 대신 반려견을 기르는 것은 이기적인 행위라고 했다. 출산을 꺼리는 현상은 이제 개인의 선택을 넘어 사회 문제가 됐다. 2023년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0.72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전체 인구의 30%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고, 반려동물은 가족이자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여진다.
현대인의 출산 기피는 복합적인 사회 현상이지만 생물학으로 한정하면 다소 명료해진다. 영국의 동물학자 힐다 브루스는 실험실에서 새끼를 밴 암컷이 새로운 수컷과 함께 살게 되면 자발적으로 유산하는 현상을 발견해 ‘네이처’지에 보고했다, 이 ‘브루스 효과’는 야생 원숭이들에서도 관찰됐는데, 한 원숭이 집단을 새로운 수컷이 장악하자 놀랍게도 암컷들이 일제히 유산했다. 이는 암컷들의 몸에서 작동하는 진화적 메커니즘이다. 태어나면 어차피 새로운 수컷에게 죽임당할 새끼는 일찌감치 포기하는 편이 자원과 에너지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발적으로 내리는 결정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수컷이 분비하는 페로몬이 암컷의 몸에 생리학적 반응을 일으킨 결과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많은 가임기 부부들은 일종의 ‘사회적 브루스 효과’를 겪고 있다. 과잉된 교육열로 인한 교육비 부담, 과도한 경쟁과 점점 커지는 빈부 격차, 내 집 마련의 어려움을 비롯한 사회 구조적 문제들이 마치 암컷 원숭이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새로운 알파 수컷처럼 출산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다만, 태어난 아이들을 죽이는 대신 애초에 생기지 않게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는 생명의 가치를 금전적으로 환산하는 것에 익숙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린 생명이 주는 순수한 기쁨과 충만한 온기, 양육을 통한 부모 내면의 성장과 자기 성찰, 미숙했던 생명체가 배우고 익혀 자라나는 과정에 대한 경이감, 미래에 대한 희망, 아이라는 약자를 제대로 대우하는 성숙한 변화 등과 같은 육아의 본질적 가치는 모두 사라졌다.
반려동물을 키우려는 욕구도 생물학적으로 자명하다. 진화가 고안해낸 ‘사랑’이란 사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작동하는 신경 기관의 메커니즘이다. 누군가를 양육하면서 느끼는 사랑도 같은 맥락이다. 어미 쥐가 새끼를 핥아줄 때마다 어미 쥐의 뇌에서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즉 어미의 뇌는 자식을 돌보면서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도록 진화해온 것이다. 인간은 모든 대상을 의인화하려는 본능이 있다. 실제로 개나 고양이를 어루만지면 사람의 뇌에서는 도파민뿐만 아니라 ‘사랑’의 호르몬인 옥시토신과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교황을 화나게 한 그 여인이 반려견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라고 한 것은 빈말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문제 해결과 국가 생산성 확보를 위한 장기적인 안목이 부족해 보인다. 2024년 심하게 삭감됐던 연구·개발과 교육 예산이 올해도 회복되지 못했다. 교육과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저출산으로 겪게 될 생산성 저하를 막을 수 있는 핵심 방편인데도 말이다. 지금의 ‘돈 잡아먹는’ 아이는 커서 우리 사회와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유동성 지능’과 ‘파괴적 혁신’은 젊은 나이에 집중적으로 개발된다. 고령화 사회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미래다. 열 명의 자식을 뒀던 찰스 다윈은 이런 말을 남겼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우리는 미래를 위한 현재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어린이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다음 세대의 좋은 미래를 위해 지금 노력해야 할 필요성을 체감한다. 반대로 주변에 점점 아이들이 사라져가는 지금, 우리가 미래를 대비해야 할 이유는 바로 기성세대 자신을 위함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