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짧은 신참 변호사로서 법정을 출입할 때 심리적으로 긴장이 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물론 법대에서 재판을 하다가 법대 아래에서 변론을 하는 것 자체로 긴장이 되지만, 이는 처음에는 어색해도 차츰 적응이 될 일이지만, 가령 피해자가 많은 피고인을 변론하기 위해 법정에 갈 때에는 피고인 못지 않게 변호사도 많이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된다.
구두 변론은 피해자들을 자극할 수 있으니 가급적 자제하고 서면으로 제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민사 재판 과정에서도 당사자들이 많이 출석하면 반대 당사자의 변호인들은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받기도 하는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하면 지난 날 법관으로 일하면서도 이렇게 심리적 압박을 받는 경우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당사자가 이른바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경우 등이다. 여성단체, 장애인 단체, 노동조합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단체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른바 인권 발전에 대한 ‘걸림돌 판사’로 지정해 실명을 밝힌 자료를 배포하거나 현수막에 실명을 기재해 비난하기도 했다. 또 여성에 대한 성범죄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이 없다는 비판이 날아오기도 했다.
요즘 부동산 불황으로 인하여 혹은 집주인의 예기치 못했던 경제적 파탄으로 다수의 세입자들에게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그렇다. 물론 피해자들의 딱한 사정도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경제적 파탄으로 자신의 삶도 거의 무너진 피고인을 향해(실무상 거의 하지 않는) 구형보다 높은 형을 선고하면 언론의 지지를 받고 정의로운 재판으로 칭송받지만, 사안을 따져 무죄를 선고하면 당장 솜방망이 판결이라는 비판의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각오해야 할 형편이다.
얼마 전 신문기사에 미국의 일론 머스크가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향해 “그루밍 갱 사건을 은폐했다”고 공격한 것과 관련한 기사가 나와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루밍 갱 사건은 1997~2013년 영국에서 11살 여아를 포함한 최소 1400명의 영국 소녀가 주로 파키스탄계 남성으로 구성된 조직폭력배들에게서 술과 마약 투약 후 성학대를 당한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한다.
수상한 파키스탄계 운전사들이 영국 소녀들을 택시에 태워간다는 의혹이 주민들 사이에서 제기됐지만, 지방정부는 이를 눈감았고, 경찰 역시 무시했다고 한다. 이렇게 지방정부와 경찰이 이 사건을 수십 년간 뭉갠 배경에는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의 압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고 한다. 이민자들을 상대로 적극 수사에 나섰다가 자칫 ‘인종 차별주의자’라는 소리를 들을까 겁을 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에 기소된 범죄자 중 한 명은 판사를 향해 “인종 차별주의자”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이러한 머스크의 문제 제기에 불편함을 표시하는 진보 언론도 있고, 정당 간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쟁점으로 논쟁 중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위 사건 재판장이 겪었을 심리적 어려움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법관으로 있을 때 전혀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게 된 사실 중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받으며 재판 중인 피고인들이 수감된 구치소(유죄가 확정된 교도소가 아닌)에서 추운 겨울에도 찬물로 씻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주일에 15분만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다고 하니, 1인당 국민총소득이 일본을 추월해 세계 10위 안이라며 자부심을 가지는 오늘날 감출 수 없는 불편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인권 및 사법 제도의 현실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하여 많이 개선되었다는 점에서 언젠가는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는 생각도 든다. 대표적으로 이전에는 검사의 구속 영장 청구에 대해 법관 앞에 변명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채 검사나 경찰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기록만으로 거의 모두 구속되었는데, 오늘날은 법관에게 구속 관련 재판을 받을 기회가 있다는 것은 대표적 개선이다. 이러한 사법제도 발전의 연장선에서 법관이 ‘정치적 올바름’이나 어떠한 도그마에 얽매이지 않고 재판할 수 있어 모든 국민이 억울함이 없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