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이 타계했을 때 경남 김해 빈소에 전직 베트남 국가 주석의 조화가 도착했다. 30여년 전 베트남에 진출한 신발기업 태광실업은 현지에서 국민기업 대접을 받는다. 베트남이 외국 기업인을 국빈 대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자국 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한때 부산은 한국을 대표하는 신발 도시였다. 1990년대부터 싼 인건비를 찾아 하나 둘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신발을 비롯한 주요 제조업이 외국으로 터전을 옮기거나 무너지면서 1970년대 전국의 28%까지 점했던 부산의 수출 비중은 현재 2%대로 쪼그라들었다.
제조업 몰락의 폐해를 온몸으로 체득한 사람이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이다. 그의 고향은 미국 중서부 산업지대인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이다. 이곳에 암코라는 철강제조회사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 제조업체 역시 비용 절감을 위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겼고, 암코는 직간접적 영향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 결과는 대량 실직과 지역 경제 붕괴였다. 암코에서 쏟아져 나온 실업자와 그 가족들이 모두 밴스의 이웃이다. 전세계 주요 대기업에 “미국에 와서 공장을 지으라”고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옆에서 더 큰 소리로 “미국을 더 위대하게”라고 밴스 부통령이 거드는 이유다.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 품목을 가리지 않고 관세를 휘두르는 미국 통상 정책에 부응해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오는 2028년까지 무려 210억 달러(약 31조 원)에 달한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투자액으로는 일본 소프트뱅크, 대만 TSMC에 이은 세번째 규모다. 현대자동차는 조지아 공장을 증설해 8500명을 고용하고, 현대제철은 루이지애나에 제철소를 설립해 1300명을 채용할 예정이다.
미국의 전방위적 통상 압력 파장이 동남권까지 미치고 있다. 현대제철은 노사 문제에 미국의 철강 관세까지 겹쳐 공장 가동 축소에 들어갔다. 포스코는 미국 진출을 검토 중이다.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있는 경북 포항에 고용 한파를 걱정하는 찬바람이 분다. 창원 공장을 운영 중인 GM은 철수설이 떠돈다. 부산 울산 경남의 수백곳에 달하는 현대차 협력업체 시름도 따라서 깊어간다. 현대차그룹은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날 24조 원 규모의 국내 투자 계획도 함께 공개했다. 평상시라면 대서특필되고 남을 사안이었으나 대미 투자에 가렸다. 대신 백악관에서 정 회장을 둘러싼 미국 정치인들의 득의만만한 미소만 빛났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