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가난한 해녀가족이 겪어온 1950년대~2000년대의 일상을 ‘가족사랑’이라는 주제로 그려낸 드라마가 요즘 화제다.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과 영상미에 감탄하고, 동시대를 살아온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 떠올라 내내 눈시울을 적셨다. 가난과 싸우며 억척스럽게 살아내던 어머니가 모진 역경에 가슴을 치던 장면에서는 ‘홧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가슴에서 목까지 뜨거운 덩어리가 차올라 온통 답답하고 가슴이 타는 느낌, 분노, 우울, 불면과 피로, 통증이 생기는 병을 예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홧병(火病) 혹은 울화병(鬱火病)이라고 불렀다. 1995년, 미국정신의학연구회에서 Hwabyung(홧병)이라는 정신의학용어로 정식 등재하면서 ‘분노의 억제로 인해 발생하는 한국 고유의 분노증후군’이라고 정의했다. 즉 화를 발산하고 풀기보다는 억누르고 참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온 특유의 민족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았다. 스트레스를 오랫동안 참아내는 과정에서 분노가 쌓이다가 결국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병인 것이다.
스트레스는 실제로 질병을 유발한다. 오스트리아의 내분비학자 한스 셀리에(Hans Selye)는 스트레스가 미치는 몸의 생리적 반응을 연구해 1936년 학술지에 발표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우리의 몸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3단계의 일반적인 반응(일반적응증후군)을 보인다.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처음에는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고(경고반응기), 적응에너지를 사용해 일정 기간은 저항력이 증가해 대항한다(저항기). 스트레스가 사라지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지만 만약 장기간 지속되면 저항력이 급속도로 고갈되어 결국 각종 장기가 망가지는 순서를 밟는다(탈진기).
홧병은 심장병, 혈관질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긴장상태를 유발하는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아드레날린, 코티졸, 글루카곤 등의 스트레스 호르몬들이 분비되어 혈압을 높이고,심장박동을 빠르게 만든다. 혈관 안쪽 내피세포의 기능이 떨어지고 혈소판 응집이 증가해서 혈관을 막는 혈전이 잘 생기는 상태가 된다. 부정맥, 허혈성 심장질환(협심증, 심근경색), 심근병증, 심장마비(돌연사)의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자식의 상실 후 처음으로 심근경색을 일으킬 가능성은 31%이며 그 심근경색이 치명적일 가능성은 58%라는 덴마크 연구보고도 있다.
스트레스의 원인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라면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적당한 운동, 건강한 식습관, 충분한 수면 등으로 우리 몸의 스트레스 저항력을 회복시켜야 한다. 취미 명상 등으로 심리적인 안정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며 전문적인 심리상담, 정신과 진료와 투약이 필요할 수도 있다.
집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는데 2015년 미국의 앤드류 웨일 박사가 대체 의학저널에 발표한 ‘478호흡법’이다. 혀를 윗니 뒤쪽에 붙인 채 배를 부풀리면서 4초 동안 숨을 들이마시고, 7초 동안 숨을 참고, 배를 집어넣으면서 8초 동안 천천히 숨을 내뱉는다. 이 호흡은 긴장된 근육을 이완시켜 몸속 산소수치를 올리고 이산화탄소 수치는 떨어뜨린다. 교감신경과 반대작용을 하는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 분비가 촉진된다. 세로토닌은 숙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으로 전환된다.
역대 최악의 산불, 관세 전쟁과 치솟는 물가, 어려운 경제상황, 비상식적 계엄 후유증, 막무가내 의대정원 정책이 불러온 의료계의 몰락위기… 최근의 연속되는 상황은 전국민적 홧병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은 잠시나마 국민의 답답한 가슴에 시원함을 주었다. 드라마에서 어머니의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지금부터 살아갈 인생은 내 아이가 자라서 기억할 이야기구나. 자식들이 내 장례식장에 와서 나를 추억할 이야기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하루도 치사하게 살수 없더라고… 모두들 폭싹 속았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