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해운대 벡스코에서 개최된 부산과학축전에 다녀왔다. 올해로 스물네 번째 생일을 맞은 이번 행사에서는 ‘과학과 문화의 앙상블’이라는 주제로 미술 음악 영화 음식 등 예술과 문화 속에 숨겨진 과학기술을 마음껏 체험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전문가와 과학커뮤니케이터의 강연과 공연, 부산의 여러 기관과 함께하는 과학 체험 및 전시, 중고생이 직접 준비한 과학 실험까지 모든 순간마다 과학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올해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행사장 내 구성된 공간의 이름에도 시선이 끌렸다. ‘르땡(장난꾸러기) 놀이터’ ‘쁘띠(작은) 과학관’ ‘에꼴(학교) 실험실’ ‘사이언스 꽁뜨(이야기)’라고 프랑스어로 이름 붙여진 공간들. 음악적이고 감성적인 표현 덕분에 행사장이 신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한 작은 학교처럼 느껴졌다. 그 공간에서 아이들은 장난꾸러기가 되어 마음껏 과학을 마주했고,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최고의 과학자였다.
“아빠! 너무 재밌었어요. 여기는 언제 또 올 수 있어요?”
과학을 만난 순간의 즐거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참여하지 못한 프로그램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행사장을 나서는 첫째 아이가 내게 던진 물음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장난꾸러기들이 환영받는 공간. 실수와 실패가 호기심으로 채워지는 공간. 틀리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틀려봐야 알 수 있는 공간에서 아이들이 보고 배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과학을 조금 더 자주 만날 수 있다면 뭐든 괜찮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내년을 기약했다.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 듀이(John Dewey)는 “교육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삶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그는 ‘Learning by Doing’(경험을 통한 교육)이라는 신념 아래 학생들의 관심과 진로에 맞춘 선택 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문제 중심 학습과 프로젝트 학습을 실천하며 전 세계에 학생 중심 교육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왔다. 각자의 경험들이 실제 삶의 맥락 속에서 서로 연결되고 쌓여가는 것. 듀이에게 교육은 그런 것이었다.
과학을 만나는 순간도 그래야만 한다. 과학과 삶의 거리는 가까울수록 좋다. 하지만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학과 학생들이 배우는 과학, 일상생활의 과학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감이 느껴진다. 이와 같은 인식은 대개 초중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과학교육이 과학의 기본 개념을 이해하는 것에 일차적인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과학에 대한 이러한 방식의 접근은 학생들을 수많은 공식과 실험 결과로 짓눌러 과학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고, 결국 과학과 삶의 거리를 멀어지게 한다.
지식 중심의 과학교육도 분명 필요하다. 과학의 기본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면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과학적 현상이 단순한 흥밋거리로만 소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문제가 때로는 더 어렵고, 해결을 위해 복잡한 과학 공식을 요구하는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지식의 전달이 과학을 만나는 유일한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과학을 삶 속에서 흥미롭고 신나는 경험과 이어가는 순간이 필요하다.
김춘수 시인은 ‘꽃’에서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누군가 그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몸짓에 불과하다고 했다. 존재의 의미를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면, 어른들은 아이들이 과학이라는 존재를 만나 관계 맺을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따뜻한 봄날의 특별한 하루로 끝날 것이 아니라 무더운 여름에도, 선선한 가을에도, 추운 겨울에도 과학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학교에서의 과학교육을 구심점 삼아 지역사회가 함께 노력할 때, 과학은 비로소 삶과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과학은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