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떡 신사’란 오래된 노래가 있다. 허우대만 멀쩡한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에서 요리를 먹고 돈 안내고 도망치다 붙잡혀 매를 맞으며 망신당하는 노래이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한 푼 없는 건달이 요릿집이 무어냐 기생집이 무어냐”라는 흥겨운 후렴과 함께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신사 차림을 한 한심한 주인공은 아버지가 모아 둔 전 재산을 다 털어먹고 가난뱅이가 된 겉만 번지르한 인간이다. 처지가 바뀌었음에도 옛 추억만 생각하고 허튼 행동을 하는 현실 부적응자이다.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라는 조롱을 받을 만한 인물이다. 우스꽝스러운 가사 속에는 굴곡 많은 세상사를 풍자하는 시대성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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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본웅의 ‘빈대떡’. |
‘빈대떡 신사’에서 빈대떡은 평범한 사람들이 집에서 해먹는 음식을 뜻한다. 이 노래의 영향 때문인지 지금도 궂은 날이면 “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자”는 말이 자주 쓰이곤 한다. 이 노래를 듣고 있자면 역시 빈대떡을 소재로 한 그림 한 점이 떠오른다. 불우하게 왜소증을 앓게 되어 ‘한국의 로트렉(하반신 성장이 멈춘 프랑스 화가)’이라 불렸고, 천재 시인 이상(李箱, 1910~1937)과의 일화로 유명한 야수파 화가 구본웅(具本雄, 1906~1952)의 ‘빈대떡’이란 작품이다. 구본웅은 그림뿐만 아니라 글도 잘 써 미술비평이나 수필도 많이 발표한 문학적 취향의 화가이다. 작가는 모름지기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가 있어야 한다는 옛 말과 잘 어울리는 작가이다. 그가 기록한 빈대떡에 대한 이야기는 찌질한 ‘빈대떡 신사’의 이야기와는 달리 매우 격조가 있다.
구본웅의 ‘빈대떡’은 해방 기념으로 출판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1974년에야 출판된 시화집 ‘허둔기(虛屯記)’에 수록된 것이다. ‘허둔기’ 속에는 그림과 글이 어울린 감각적인 시화 45편이 실려 있는데, ‘빈대떡’은 그 중 34번 째 편이다. 빈대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위편에 빈대떡을 부치는 모습을 배경 풍경 없이 대상만을 간결하게 그렸다. 세 발 달린 무쇠 화로 위에 솥뚜껑을 올려놓고 기름을 둘러 빈대떡을 부치고 있는 모습이다. 선 몇 개만으로 원하는 대상을 상큼하게 그려내었다. 그림 오른 쪽에 영문 서명을 해놓았는데, 구본웅이 화로 곁에 앉아 빈대떡을 부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림 아래쪽으로는 자유로운 필체로 쓴 글씨가 그림과 절묘하게 어울려 있다. 글의 내용을 현대어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이름은 떡(餠)이나 적(炙)의 항렬의 것이니 ‘빈대떡’이다. 근자에 지체가 부쩍 높아졌으니 평안도 ‘녹두지짐’이나 황해도의 ‘막부치기’가 바로 이 빈대떡이다. ‘지짐이’ ‘막부치’란 이름이 오히려 그 성격을 잘 나타냈다 하겠으며, 이름 빈대떡을 ‘빈자떡(貧者떡)’이라 해서 행세 못한 것은 옛날 말이요, 요사이는 ‘빈대떡(賓待떡)’으로 곳곳에서 손을 기다리는데 천객만래(千客萬來)로 손이 넘쳐 걱정일 지경이니 그 저분저분하고 구수하며 뜻뜻함이 전유(煎油)의 대용품만으로 볼 것은 아니다.”
빈대떡이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시절과는 다르게 손님을 접대할 만한 음식으로 신분이 달라진 세태를 보여준다. 지금도 손 많이 가는 번거로운 음식이라 집에서는 잘 해먹지 않는다. 먹을라치면 잘하는 집을 찾아 꽤나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날씨가 궂기라도 하면 어디서 빈대떡에 막걸리라도 한잔 할까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것을 보면 현대에도 빈대떡은 진정한 ‘영혼을 울리는 음식(소울 푸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