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는 공연장에 다니느라 바빴다. 이달 들어 공연 현장이 부쩍 늘어났다. 여러 공연장에서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객석을 향해 말을 걸어 더 친근하게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봤다. 그런 모습은 인상 깊었고, 이런 노력이 더욱 다채로워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지난 12일 금정문화회관(부산 금정구) 은빛샘홀에서 열린 ‘도서관 옆 음악당 첫 번째 이야기 - 콘트라베이스(KONTRABASS)’는 작정하고 책-악기-연주자를 하나로 묶어 관객과 정담을 나누는 자리로 기획했다. 문화유목집단동행과 부산시교육청 중앙도서관이 공동 주최한 이 공연은 4월 12일 도서관의 날을 맞아 마련했으며 앞으로도 이어갈 예정이다.
‘동행’의 정두환 예술감독은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콘트라베이스’를 실마리로 삼았다. 새로 나온 이 책의 최근 번역본 제목은 ‘콘트라바스’다. 한국에서도 많은 독자가 읽은 명작이다. 정 예술감독은 책 제목 사연부터 소개했다. “콘트라베이스는 사실 세상에 없는 말입니다. 독일어권에서는 ‘콘트라바스’로 발음하고, 영어로는 ‘더블베이스’라고 하죠. 오케스트라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고 주목받지도 못하지만, 이 악기가 저음으로 바탕을 깔아주지 않으면 오케스트라는 좋은 소리를 못 냅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소중한 악기입니다.” 그가 덧붙였다. “마치 이 세상의 우리 소시민처럼 말이죠.”
그리고 부산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박지수 씨가 어른 키보다 큰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출연했다. 지극히 낮은 음을 내는 이 거대한 4현 악기로 바하의 무반주 첼로 등을 들려준 그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살아가는 애환과 보람, 악기의 특징에 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구부정한 자세로 연주해야 하는지, 독주가 왜 힘든지도 알게 됐다. 박 연주자가 “처음에는 이 큰 악기가 내게 기대는 것도 싫었다”고 말했을 때는 객석에서 웃음보가 터졌다. 콘트라베이스가 관객에 말을 걸고, 사람들은 즐겁게 정담을 나눈 110분 공연이었다.
지난 9일 국립국악원 연악당(대극장)에서 펼쳐진 88고개, 김온경 부산 악가무를 보다’는 부산의 민간 춤 예술단체가 좀체 보여주기 힘든 큰 규모와 앙상블을 선사한 공연이었다. 88세를 맞은 원로 춤 예술가 김온경 선생이 필생의 노력으로 가꾼 우리 춤을 홀춤부터 군무까지 다채롭고 화려하게 무대에 올렸다. 이 공연 또한 대화를 전진 배치했다. 경상국립대 강인숙(민속에술무용학과) 교수가 김온경 원로와 대담하는 렉처(lecture) 콘서트 형식이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멋진 춤 공연을 보면서 그 춤에 얽힌 이야기까지 현장에서 바로 들으니 내용이 쏙쏙 귀에 들어왔고 춤이 더 잘 보였다.
이날 김온경 원로는 “영남 춤의 특징은 영남의 산세와 지역성의 영향을 받았다. 선이 굵은 편이고 호흡도 커서 애리애리하거나 예쁘장한 느낌은 아닐지언정 자꾸 보면 속 깊은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취지로 말했을 때 이 공연 전반의 분위기가 확실히 이해되는 기분이었다.
끝으로 예시로 드는 공연은 지난 12, 13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개최된 제34회 부산무용제이다. 이틀 동안 경연 작품 3편의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무대 양쪽 대형 스크린에는 안무자가 작품의 의도와 특징을 설명하는 영상이 상영됐다. 이런 방식을 언제부터 도입했는지는 굳이 주최 측에 묻지는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이 시도를 환영했다. 공연예술로서 춤 공연은 추상성이 아주 높아, 관객이 현장에서 생짜배기로 맞닥뜨리면 전개를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흔히 생긴다.
추상성이 일정 수준 이상인 춤 작품을 객석에서 관객이 처음 보고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날의 영상 상영 같은 보완책을 고려할 수 있다. 영화 예고편을 본다고 감상에 치명상이 생기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방식에 관한 찬반 의견이 있을 수 있으므로, 원치 않는 예술가에게는 거부할 선택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런 영상 상영 또한 부산무용협회가 관객에게 말을 거는 시도라고 받아들였다.
공연장 가는 길은 설렌다. 기대감과 호기심이 생긴다. 버스를 타고, 도시철도에 몸을 싣고, 차를 몰고 비 올 땐 우산을 들고 그곳에 가서, 잠깐 차를 마시다가 북적북적해진 로비에서 사람 물결에 섞여 어두운 극장 안 내 자리에 앉으면 기대감은 한결 높아진다. 공연장 나들이는 어렵잖게 일상에서 빠져나와 내 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래서 관객은 객석에서 공연이 자기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바란다. 말을 거는 방식은 다양하다. 공연 내용이 쉽고 재미있고 흥미로워야만 한다는 뜻이 아니다. 낯설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공연 작품은 있게 마련이며 높은 가치를 지닌다. 동시에 객석에 더 가까이 다가서고 말을 걸어주는 방법도 다양하다는 점도 기억되기 바란다.
조봉권 문화라이프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