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TV로 방영된 국민의힘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의 발언이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마련한 정당별 정강정책 연설에서다. 윤 원장은 국민의힘 대표로 나와 대통령실과 당의 수직적 관계를 비판하고 “그런 움직임을 추종했거나 말리지 못한 정치, 권력에 줄 서는 정치가 계엄을 낳았다”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비상계엄과 탄핵을 사죄했다.
윤 원장은 21대 국회에 첫발을 디뎠으나 부친의 농지법 위반이 문제가 되자 스스로 의원직을 던진, 초선도 아닌 반선 의원이다. 그런 이가 자기 정당을 ‘썩은 정치’로 규정하며 “도려내야 한다”고 직격한 것이다. 윤 원장 개인의 자질도 작용했겠지만, 정치 때가 덜 묻을수록 본질을 직시하는데 주저함이 없다는 인상을 준 장면이었다.
국민의힘 창당 후 지난 5년간 당 대표 3명, 비상대책위원장 6명이 거쳐갔다. 이준석을 당 대표에서 밀어낸 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주고 받은 ‘체리 따봉’ 문자는 대통령실과 당의 비정상적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에 협조하며 정권 탈환에 기여한 안철수 의원을 “무례하다”며 짓밟고,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는 비윤계를 주저 앉히려고 초선 의원들이 연판장을 돌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배후가 누군지 세상이 다 알기에 숨기려는 시늉도 할 필요 없었다. 가치나 원칙이 아니라 ‘1호 당원’ 눈치보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때 그 작태를 벌인 사람들이 무슨 대단한 의리인 양 윤 전 대통령을 감싸고 있으나 그건 금배지가 위협받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일 것이다. 다수 힘으로 당권을 쥐고 공천만 보장받으면 정권은 반납해도 상관없다는 속내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태도다.
현재 국민의힘 대선 2차 경선에 오른 후보들은 대통령실이나 당 주류와 불화했거나 일정 부분 거리를 둔 사람들이다. 김문수 후보는 지금의 국민의힘이나 ‘친윤’ 혹은 ‘찐윤 ’세력과는 지나온 궤적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른 인물이다. 홍준표 후보는 현실정치에 끊임없이 간섭하기는 했지만 21대를 마지막으로 국회를 떠나 대구시장에 비켜나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의 둘도 없는 측근에서 반윤으로 돌아선 한동훈 후보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장까지 지냈으나 다른 목소리를 내며 철저히 아웃사이더에 머문 안철수 후보는 더하다. 그 많은 5선 6선 의원 중에는 대선 후보로 엄두를 내는 사람조차 없다.
더불어민주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20대 대선 이후 당을 순식간에 장악해 대표를 연임하고 두 번째 대선 후보로 확정된 이재명 전 대표는 국회의원으론 초선이다. 경선에 나섰던 김동연 후보는 지난 대선 때의 이 전 대표처럼 의원 경력이 없다. 김경수 후보도 초선이 전부다. 정권 창출이 목적인 정당에서 당이나 의정 경력이 대선 후보의 필수조건이 못 되는 것, 정당정치의 실패가 아니면 무엇인가.
정당이 이러니 기성 정치에 염증을 느낀 국민 여론에 기대 관료나 행정가, 기업가가 급부상하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반복된다. 멀리는 문국현 고건 안철수가 그랬고, 가까이는 반기문 황교안이 그랬다. ‘대통령 윤석열’도 그중 하나였다. 이번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다. 출마 선언이 임박했다곤 하지만 아직 공식 등판도 하지 않은 그가 보수 계열 후보 가운데 지지율 1위를 달리는 건 분명 기현상이다. 한 대행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거쳐 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보수와 진보 정권을 두루 경험한 정통 관료다. 관료 출신은 결단력이 약하다는 선입견과 달리 한 대행은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긴 했다.
계엄은 윤석열의 죄가 가장 크지만 이재명의 죄도 그에 못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윤석열도 싫고 이재명도 싫다는 게 무당파 국민 상당수의 인식일 것이다. 민주당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을 “위대한 국민의 승리” 운운하며 애써 포장하려 한다. 그러나 헌재는 이런 결과를 낳은 정치의 실종에도 강한 경고음을 울렸다. 한 대행이 정치판으로 불려나온 데는 민주당도 일익을 담당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민주당은 한 대행을 내란 공범으로 엮고 있지만, 폭주하는 민주당을 제일 가까이서 겪은 사람이 한 대행이기도 하다.
‘한덕수 현상’의 결과가 찻잔 속 태풍일지, 파란이 될지는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 김영삼 김대중처럼 정치인생 전부를 국민과 함께 한 정치인은 더 이상 우리 정치판에 없다. 그렇다 해도 그때 그때 상황과 필요에 의해 떠받들어진 인물의 너무 잦은 부상은 결코 정상이 아니다. 그 비정상의 정치가 한국 정치이다. 이를 인정하든 혐오하든 분명한 건 지금같은 정치가 계속되는 한 다음 대선에서도 누군가가 또 불려 나올 것이란 점이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