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사랑, 그리고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김비아 부산대 심리학과 교수

  • 김비아 부산대 심리학과 교수
  •  |   입력 : 2025-04-30 18:51:06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난 주말, 집안 대청소를 하던 중에 팬트리 한 구석에 있던 쌀 포대에 눈길이 갔다. 책이나 영화로만 보던 계엄선포가 현실에서 벌어진 그 밤, 내가 재빨리 한 일은 기본 식료품과 생필품 주문이었는데 그때 새벽배송 패닉 바잉으로 사 두었던 쌀이었다. 덜 불안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덩그러니 한 편에 있는 쌀 포대를 대청소 중에 발견하고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내 밀려드는 씁쓸함과 함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 오롯이 느껴졌다.

1937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남학생 268명이 의학적·심리학적으로 행복한 노후를 결정하는 요인을 탐색하는 목적으로 설계된 연구의 연구대상자로 선발되었다. 이 연구의 참가자들은 후에 제35대 미국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를 포함, 세계 최고의 대학에 입학한 금수저 수재 중에서도 가장 똑똑하고 야심찬 남성들이었다. 연구비를 후원한 백화점 재벌 윌리엄 그랜트의 이름을 따서 ‘하버드 그랜트 연구’라고 불리는 이 괄목할만한 종단적 연구는, 1937년에 시작해 1999년 자료 수집을 마치고 이후 방대한 자료의 분석까지 포함해서 75년 남짓 수행되었다. 연구 기간 동안 2년에 한 번씩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행복과 삶의 만족도 등을 포함한 다양한 설문조사 자료를, 5년에 한 번씩 건강 관련 자료를 수집했는데, 오랜 기간 막대한 연구비가 투입된 이 연구가 수행되는 동안 연구책임자는 3번이나 바뀌었고 최종 자료수집 시점에 연구참가자들의 사망률은 38%에 이르렀다.

당시 학부 2학년생으로 전도유망했던 하버드 학생들의 일생을 75년에 걸쳐 추적한 결과는 심리학 분야에서 아주 주목받는 종단적 연구로 자주 소개된다. 1967년부터 연구책임자를 맡아 온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 조지 베일런트의 결론은 이 엄청난 연구의 결과라고 보기엔 다소 시시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은 결국 사랑’이라고 결론지었다. 한 인간의 성공적인, 즉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심리적으로 행복한 노후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사회적 계급이나 지성이 아니라 사회적 적성, 즉 안정적인 인간관계로 밝혀졌다. 연구 결과, 40대 후반까지 형성되어 있는 인간관계가 이후 삶의 질을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변인이었으며,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가장 안정적인 성공을 이루었다.

또한, 이 연구에서는 행복하게 나이 들어가는데 필요한 7대 변인이 도출되었는데 이 결과 또한 너무나 평범해서, 독자들이 ‘고작 이런 것들을 밝혀내려고 그 오랜 기간 동안 막대한 연구비를 투입했다고?’라며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르겠다.

행복한 노화와 관련 있는 일곱 가지 요소 중 첫 번째는 고통에 적응하는 성숙한 자세(즉, 우리 삶에 고통과 시련이 닥쳤을 때 심리적으로 와해되지 않고 잘 수용하며 견뎌내는 태도)였고, 그 다음으로 ‘교육, 안정적 결혼, 금연, 금주, 규칙적인 운동, 적당한 체중’ 순이었다. 행복하게 나이 들어가는데 필요한 일곱 가지 요소 중, 50세에 대여섯 개를 갖춘 106명 중 절반이 80세에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었다. 반면 50세에 이 요소들 중 세 개 이하를 갖춘 이들 중 80세에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회과학 연구에서 상관계수 0, 비율 0%, 빈도 0개는 아주 드문 결과이다. 인간의 변산성은 매우 크고 사람이 보이는 반응은 아주 다양하기 때문에 결과 ‘zero’를 발견하게 되는 일은 거의 없는데, 이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나에게 하버드 그랜트 연구는 ‘사랑, 그리고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으로 요약된다. 다행히 몇 시간 만에 해제되긴 했지만, 지난 겨울 어느 밤 계엄선포는 평범한 일상을 뒤흔든 충격이자 대혼란이었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나에게는 쌀 한포대가 남았다. 조기 대선 정국에 또 다른 혼란이 있겠지만 결국 그 속에서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이고, 이 일상을 소소하게 나누며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랑하는 이들이 몇 명이라도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는가. 글을 마무리하려니, 순간 몇 명이 떠오른다. 강의도, 연구도, 일도 다 중요하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생각만 하고선 연락을 미뤄두었던 나의 소중한 그들에게 전화라도 해 봐야겠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가수 김호중팬클럽 ‘그레이스방’ 회원들, 부산시장애인체육회에 성금 전달
  2. 2'부캉이' 북항 놀러 왔다가 덜컥 정착?…부산 명예홍보대사 도전
  3. 3대구도 ‘돔 유치’ 참전…부산 부지·재원 서둘러야 국비 선점
  4. 4다대소각장 개발 다시 원점…부산시, 부지매각 해지 결정
  5. 5수해 상처 여전한 거제, 전국서 ‘한가위 온정’
  6. 6장기체류 ‘부캉이’ 연휴 뒤 외해로 유도할 듯(종합)
  7. 7HJ重 올해 8척 ‘릴레이 수주’…대형선 경쟁력 입증
  8. 8가덕신공항 부지공사 기본설계 정부심의 통과
  9. 9곳간 적자 사하구, 감천마을축제 예산은 더 늘려
  10. 10청와대 ‘검찰개혁 국민 속였다’ 유시민에 법적 대응 검토
  1. 1청와대 ‘검찰개혁 국민 속였다’ 유시민에 법적 대응 검토
  2. 2우크라이나에 생포된 북한군 포로 2명, 이미 한국 입국해
  3. 3[정가 인&아웃] 울산 남갑서 당권파 - 친한계 격돌하나
  4. 4“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5. 5[속보] 정부, 젤렌스키 ‘북한군 포로 한국행’ 발언 사실상 확인
  6. 6李 유엔연설 “한반도 종전 위해 당사자 대화하자”
  7. 7민주 “조희대의 내란” 국힘 “더 가면 李탄핵”
  8. 8국힘 유용원 “北포로 송환, 정부 노고 감사…젤렌스키 통해 알려진 건 아쉬워”
  9. 910대 부산시의회 의정모임 해양·이동 문제 집중
  10. 10[속보] 北외무상 “핵보유 의지는 백년·천년이 지나도 절대불변”
  1. 1다대소각장 개발 다시 원점…부산시, 부지매각 해지 결정
  2. 2HJ重 올해 8척 ‘릴레이 수주’…대형선 경쟁력 입증
  3. 3가덕신공항 부지공사 기본설계 정부심의 통과
  4. 4북항 핫플만든 인싸 상어 '부캉이', "인기 덕 좀 봅시다" 마케팅 열풍
  5. 5[한 손 뉴스] 국산 전투기로 영공 수호…KF-21 공군 1호기 배치
  6. 6바리스타 심사위원이 만든 스페셜티
  7. 7홍지선호 국토부 출범 “公기관 2차이전 속도”(종합)
  8. 8빚에 허덕이는 20·30세대…올해 '개인회생 신청' 3만명 육박
  9. 97000피 사수했지만 ‘전강후약’…연휴휴장 속 美中정상회담 촉각(종합)
  10. 10132개사 키운 부산銀…스타트업 IR로 기업과 연결
  1. 1'부캉이' 북항 놀러 왔다가 덜컥 정착?…부산 명예홍보대사 도전
  2. 2대구도 ‘돔 유치’ 참전…부산 부지·재원 서둘러야 국비 선점
  3. 3수해 상처 여전한 거제, 전국서 ‘한가위 온정’
  4. 4장기체류 ‘부캉이’ 연휴 뒤 외해로 유도할 듯(종합)
  5. 5곳간 적자 사하구, 감천마을축제 예산은 더 늘려
  6. 6북항 핫플만든 인싸 상어 '부캉이', "인기 덕 좀 봅시다" 마케팅 열풍
  7. 7밀양 분만 의료공백 현실화…산모들 부산·창원 원정
  8. 8가게 이름 ‘시진핑’이라서?…한밤중 괴한에 ‘페인트 테러’ 당한 중식당
  9. 9북구, 오태원 전 구청장 수사의뢰…‘쑥뜸방’ 과태료·변상금 부과 절차
  10. 10남구의 파격…‘음식점 소공연장’ 대관료 지원 검토
  1. 13경기 1실점 철벽 마운드 韓, 조1위 슈퍼라운드행
  2. 2父 여홍철과 어깨 나란히…여서정, 8년 만에 도마 금메달
  3. 3여서정·안세영·우상혁…‘금빛낭보’ 기대
  4. 42전 전승 한국축구, 조 선두로 8강 진출
  5. 5송세라, 항저우 한 풀었다…AG 첫 ‘금빛찌르기’
  6. 6[속보]한국 카누, 아시안게임 남자 카약 4인승 500m 금메달
  7. 7부상 악재 이정후, 사실상 시즌 아웃
  8. 8육상 8년 만의 금빛 질주 기대…육상 29일까지 ‘골든데이’
  9. 9셔틀콕 女단체 4강행…배드민턴 女단체전 2연패 시동
  10. 10프로농구 시범경기 24일 점프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자동화의 세상에서 지능화의 세계로
인간만의 영역 ‘관광과 과학’의 결합
국제칼럼 [전체보기]
추석 밥상에 오를 이재명 정부의 성적표
그때 부끄러움을 알았더라면
기고 [전체보기]
존엄 보장하는 부산형 청년보장제 되기를
복합재난에 강한 도시의 조건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영산회상, 불교음악에서 풍류음악으로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작자 미상
범숙학교의 기적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직업병에 대한 자세, 무지와 고의 사이
아이의 근시, 안경만 쓰면 끝?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부산대·부산교대 통합, 구체적 로드맵부터 마련하라
동남권 건강지표 ‘빨간불’…촘촘한 의료 안전망 구축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지방시대위’ 부산 이전, 다시 뛰는 대한민국
니트 세대와 한국 노동시장의 불편한 현실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6·3 부산시장 선거, 부동산 정책의 길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공정함이 만드는 브랜드 가치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청년·노인 예산은 경쟁 관계가 아니다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