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이 예민하던 무렵 ‘등대지기’를 꿈꾼 적이 있었습니다. 바다 멀리, 먼 외딴섬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등대에서 파도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를 친구 하며 등대지기로 살고 싶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틈틈이 하얀 200자 원고지에 바닷빛 잉크로 시를 쓰면서 말입니다. 그건 이뤄질 수 없는 꿈이 아니라, 가 닿을 수 없는 신기루였습니다.

어쩌면 당신도 어떤 시기에는 외로운 등대지기를 꿈꾸었을 것입니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로 시작하던 ‘등대지기’란 노래가 우리에게 같은 꿈을 꾸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노래가 영국 민요인 것을 나이가 들어 알았습니다.

1980년대 대학 시절 자매결연을 한 통영 소매물도 등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 3교대를 하며 근무하는 등대지기의 현실과 낭떠러지에 서 있던 등대를 보고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넓은 바다 위에 점으로 찍힌 섬은 그때 한심했던 청춘의 나이로는 낭만이 아니라 감옥 같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등대지기가 제 꿈의 목록에서 빠져버렸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는 1903년 대한제국 시절에 만들어진 인천 팔미도 등대입니다. 1903년 6월 1일에 처음 점등했다고 합니다. 최근 ‘삼국유사’에서 ‘가락국기’를 다시 읽으며 재미난 생각을 했습니다. 허황옥이 배를 타고 금관가야로 들어올 때, 수로왕이 신하 유천간에게 일러 망산도 위에 올라가 기다리다가 횃불을 올려 허황옥의 배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도우라고 했습니다. 그 일은 AD 48년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근대식의 등대는 아니었지만 유천간이 횃불을 올린 일을 최초의 등대라고 생각했습니다. 1903년 팔미도 등대보다 1855년이나 앞선 가락국의 등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횃불을 밝힌 망산도는 제 고향인 진해의 용원동에 실존하는 섬입니다. 저는 또 즐거운 상상을 합니다. 진해가 고향인 저도 등대에 대한 DNA를 가지고 있었기에 등대지기를 꿈꾸었다고.

물론 역사는 가정이 아니라 사실이지만 그 틈 사이 이러한 상상의 공간은 허용된다고 믿습니다. 가락국을 연구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저의 가설을 이야기하니, 친구는 제가 시인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라고 웃으며 답해주었기에 더욱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진해는 해군의 도시이고 벚꽃의 도시지만 여기에 등대의 도시를 더했으면 합니다.

요즘 제가 자주 찾는 등대는 마산의 ‘막개도 등대’입니다. 맑은 사궁두미(蛇弓頭尾) 앞바다인 창원시 마산합포구 덕동동 산 135에 ‘막개도’란 무인도에 있는 무인 등대입니다. 기록을 살펴보니 마산항의 교역이 증가하면서 무역선이 늘어나고 진해 해군의 군함이 늘어나게 되면서 생긴 등대였습니다. 부산항 마산항 진해항의 항로가 중시되면서 1962년 2월 7일에 건립, 점등한 하얀 등대입니다.

막개도 등대는 원형 평면의 콘크리트 구조입니다. 전체 높이는 18.2ｍ입니다. 밤이 되면 막개도 등대에 불이 켜지는데 4초에 한 번씩 반짝이며 밤바다를 지킵니다. 자주 깜빡이는 불빛이 성질이 좀 급한 등대라고 소개하기도 합니다. 빛이 도달하는 광달거리는 고작 10ｍ, 이 작고 멀리 비추지도 않지만, 충분히 제 기능을 다하는 고마운 친구입니다.

막개도 등대는 해양수산부 마산지방해양수산청이 관리하는데 마산의 일출 명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막개도 등대에서 바다로 나가면 마창대교가 있고, 그 뒤로 귀산과 진해 바다가 이어집니다. 등대는 낭만적인 이름입니다. 그래서 등대지기가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등대의 행정적인 이름은 ‘항로표지관리소’며, 등대지기는 취업하기에 경쟁이 치열한 해양수산청 공무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등대를 사랑하는 이유는 밤바다를 밝히며 모든 배들의 항로를 안전하게 안내하는 일에 있습니다. 인생이란 바다에 우리에게 길을 안내하는 등대는 어머니였고 아버지였고, 스승이었고 좋은 친구들이었다는 생각을 해보는 5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