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이 가방 가격을 인상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매장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값이 오르기 전 사들이려는 ‘오픈런’ 족들이다. 대기줄엔 남성도 적지 않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엄마한테 가방 사주려는 건 아닐텐데.” 샤넬은 남친에게 밤샘까지 시킬 정도로 여성들이 선호하는 명품 브랜드다. 매장마다 하루 입장 가능한 인원이 한정돼 있고, 특정 모델은 한 사람이 한 해 구입할 수 있는 개수가 정해져 있으며, 그마저도 일정액 이상 실적이 있어야 한다. 사두면 무조건 이익이라는 ‘샤테크’ 인식도 만연하다. 패션 인플루언서들이 샤넬백을 갖고 싶어 하는 구독자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살 수만 있으면 사라.”

10년 전 부산의 한 변호사가 내연 관계인 현직 여검사에게 선물 공세를 하면서 사건 청탁을 넣었으나,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 판결을 받아 공분을 산 적이 있다. 김영란법의 입법 단초를 제공한 ‘벤츠 여검사 사건’이다. 이들이 주고 받은 선물 목록에 벤츠 자동차와 함께 샤넬백이 있었다. 고위 관료 출신 모 대학교수는 학교 공금으로 여성용 샤넬백을 구입했다가 톡톡히 망신을 샀다. 개그우먼 이수지가 강남 엄마를 패러디한 ‘대치동 도치맘’ 콘텐츠에서 아이 학원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차 안에서 김밥을 꺼내 먹는 장면이 있는데, 그 가방도 샤넬이다. 샤넬은 어느새 고급스러움과 사치의 대명사가 됐다.

김건희 여사 연루 스캔들에 어김없이 샤넬백이 등장했다. 검찰 수사 결과 3년 전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전후 김 여사 측에 샤넬백 2개가 전달됐다는 것이다. 둘 다 모 종교단체가 해외 사업 추진 대가로 제3자(건진법사)를 통해 보냈다고 알려졌다. 지금 가격으로 치면 두 개 합해 2700만 원 가깝다. 웬만한 직장인 신입 연봉이다. 가방은 현재 종적이 묘연하지만, 모두 여사 측에 건네졌고 이를 샤넬 매장에서 개당 100만~200만 원씩 웃돈을 주고 다른 가방으로 바꾼 정황까지 포착됐다. 오픈런 없이 즉석에서 교환까지 할 수 있었던 걸 보면 VIP는 확실히 다르다는 인상을 준다.

미국발 관세전쟁 직후 수백만 수천만 원대 명품백의 원가가 실은 판매가의 10분의 1도 안 된다는 폭로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명품족에게 제품 원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지불한 돈의 액수보다 손에 넣은 희소성과 차별성의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허영심은 검은 거래의 쉬운 공략 대상이다. 60여년 전 세상을 뜬 코코 샤넬도 자신의 영혼을 갈아넣은 작품이 뇌물 수단이 될 줄은 생각 못했을 것이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