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제때 못 갚는 자영업자가 늘면서 은행권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이 급등하고 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개인사업자 대출 평균 연체율(1개월 이상)은 지난달 말 평균 0.67%로 전 월보다 0.06%p 올랐다. 지난해 말(0.48%)보다는 0.19%p 높다. 코로나19사태 이후 빚으로 연명해오던 자영업자들이 고금리와 내수 침체가 이어지면서 한계상황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들이 고금리, 고물가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빚을 제때 못 갚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냉면 전문점 모습. 연합뉴스

전체 금융권으로 확대하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한국은행 통계)은 1064조2000억 원으로, 1년 새 11조 원 늘었다. 여러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려 추가 대출이나 돌려 막기를 하는 자영업자들도 적지 않다.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저신용자인 취약 자영업자 대출은 125조4000억 원으로 전체의 11.8%에 달한다. 당장 코로나19 시기 대규모로 유예됐던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47조4000억 원) 상환 만기가 오는 9월 돌아온다. 이미 한계상황에 있는 자영업자들이 상환 압박, 신용도 하락 등 어려움을 겪게 될 전망이다. 금융권에선 9월 만기 대출금 중 상당 부분을 회수가 어려운 악성 부채로 보고 있다. 워크아웃이나 회생 등 기존 제도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자영업 부실이 금융리스크로 전이되지 않도록 정부가 배드뱅크 설립을 서두르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인 부채 탕감을 위해 배드뱅크로 하여금 금융기관이 보유한 부실 자산이나 부실 채권을 전문적으로 사들여 처리하려는 것이다. 이는 새 정부 서민금융 정책의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이 이달 중 전 금융권 연체채권 규모를 파악해 금융위원회에 보고하면 정부는 이를 토대로 다음 달 채무조정 범위와 규모를 결정할 예정이다. 상환 능력이 없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빚을 탕감해 재기 발판을 마련해 주는 일은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빚 탕감을 반복한다면 ‘버티면 안 갚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밖에 없다. 성실히 상환한 채무자들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일회성 채무조정이 자영업자 경제적 자활 측면에서 큰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자영업자의 개인워크아웃 성공 확률이 직장인의 60% 수준에 그친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2014년) 조사 결과가 있다. 배드뱅크 설립과 운영에 막대한 재정 투입이 불가피한 점도 걱정스럽다. 국가 부채 확대는 국가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벼랑 끝 자영업자를 돕는 일은 필요하나 정부는 엄격한 심사기준과 절차에 따라 채무 조정과 탕감을 최소화해야 하겠다. 현재 은행 대출금을 한꺼번에 갚아야 해 폐업하지 못하는 ‘좀비’ 자영업자가 적지 않다. 단순히 채무 조정을 하며 이들의 연명을 돕는 것은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정부가 과잉 상태인 자영업 구조조정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