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知之爲知之 不之爲不知 是知也-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논어 위정 17). 이 말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이번 대선을 전후해 벌어지는 사회현상을 미리 설명한 것 같아 놀랍기만 하다. 정확한 사실과 정당한 논리를 통해 지식을 얻었을 때 안다고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판단을 보류하거나 모른다고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논란이 있다거나 의혹이 있다는 식으로 근거 없는 주장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일이 상례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근거와 논리가 부족할 때 외부적인 권위로 포장하기 위해 종교를 동원하고, 불확실하지만 자극적인 주제를 감각적인 표현으로 들먹이며 사람들의 눈과 귀를 속이는 현상을 보면 탄식이 절로 난다.

예를 들어 보자. 기독교의 구약성서는 다른 민족의 일원과 혼인하지 말라고 말한다. 특히 법규정 모음집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사람은 가나안 땅의 원주민과 통혼하지 말라는 명령이 나오는데(신명기 7:3), 그 이유는 이스라엘 사람이 가나안 문화에 동화되어 다른 신을 섬길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또 암몬이나 모압 사람을 민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도 했는데(신 23:3), 그들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돕지 않고 오히려 저주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경험에 기초해 특정한 외국인을 향해 적대감을 표현했다.

한편 전쟁을 해서 포로로 잡은 사람들 중 아리따운 여성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면,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 한 달 동안 자기 부모를 잃은 것을 애도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그 후에 아내로 삼으라고 했다(신 20:14, 21:10~14). 전쟁을 하면 패전국 주민을 포로로 잡던 관습을 사실로 인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단계를 거치면 혼인을 법적으로 인정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니까 다른 민족과 혼인하는 문제에 관한 견해가 한 가지가 아니었으며, 이념적인 견해와 현실적인 견해가 공존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독립을 잃고 식민지 주민으로 전락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자신을 지켜 줄 왕국이라는 울타리를 잃은 뒤에도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며 생존하기 위해서 다른 민족과 혼인하는 일을 더 철저하게 막기 시작한다(에스라 9:1~4 참고, 말라기 2:11). 심지어 이미 결혼해서 사는 부부들도 이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스 10:1~4, 11~12). 이런 분리주의 정책을 시행한 사람은 사제이면서 서기였던 ‘에스라’였는데, 그는 가나안 원주민과 혼인하지 말라는 법규정을 인용한 뒤 이를 모든 외국인에게 확대 적용했고, 이것이 거룩한 것을 속되게 만든 종교적 죄라고 규정한다(스 9:2). 에스라는 기존 법전통을 잘 알고 있었지만, 정해진 범위 안에서 제한적으로 법을 시행하지 않고, 자신의 종교적 권위를 동원해 법의 정신을 더 넓게 해석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에스라의 사상은 이스라엘 민족의 기본적인 정신으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기원전 2세기 내외에 기록한 요벨서나 사해사본에도 유사한 사상을 찾아 볼 수 있고, 서기 1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유대 철학자 필로나 역사가 요세푸스도 이런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른 민족 사람과 혼인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정치적 윤리적 측면에서 찾을지, 아니면 종교적 측면에서 찾을지 이견이 있었지만 결론은 동일했다.

이런 현상을 한 걸음 물러서서 살펴보면, 이스라엘 왕국이 타국의 식민지로 전락해 민족 공동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유대 지도자들이 종교적 권위를 입고 혼인과 외국인 여성이라는 주제에 극도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은 실제로 다른 민족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혼인하는 사람이 많았던 당시 상황을 반영할 수도 있지만, 자극적인 성문제에 관해 논란이나 의혹을 제기하며 사람들을 한쪽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벽을 더 높이 세우고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고립적으로 유지하려 했던 분리주의자들은 불굴의 의지로 신념을 지키던 민족주의자들이었을테고, 이들에게 유대 종교는 매우 쓸모 있는 언어와 개념을 제공했을 것이다.

역사의 무대 위에 선 개인과 공동체는 선택과 책임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규정한다. 그러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동의 세월 앞에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자는 대중의 인기를 얻거나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그래서 몰라야 하는 것도 안다고 말하며 승리를 쟁취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사회가 건전하게 생존하려면 법적인 주체로 개인이 내린 결정에 따라 공정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제도일 뿐만 아니라 시민 개인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