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 유피테르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인간을 미워한다. 아마도 하늘의 신은 인간들이 죄 많은 존재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인간의 원죄 이야기는 하늘의 불에서 시작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을 창조하면서 동물마다 제각기 하나씩 생존 기술을 나누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줄 것이 모자라자 지상의 존재에게 금지된 불을 훔쳐다 주었는데, 이때부터 유피테르는 금지된 불을 훔쳐 쓰는 인간을 미워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다가 인간 세상이 마침내 불의로 가득 차고 정의의 여신마저 끝내 인간 세상을 버리고 나자 신의 미움과 분노를 돌이킬 여지가 하나도 남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죄 많은 인간은 유피테르에게서 수많은 벌을 받고 있다. 우선 그는 역병으로 인류를 무너뜨리고 삶의 희망을 빼앗기 위해 재앙의 항아리를 판도라로 하여금 열게 만들었다. 또 트로이아 전쟁이나 테바이 전쟁 등 인류가 서로 싸우다가 쓰러져가도록 인간들 사이에 전쟁을 일으켰다. 하늘의 신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걸 땅속에 숨겨놓고 열심히 땅을 파고 일구어 땀 흘려 수고하는 노동의 삶을 인간으로 하여금 살게도 하였다. 실낙원이라는 제목으로 전해지는 이런 이야기의 삶도 벌이라면 벌이다.
대홍수는 신이 인류에게 내린 형벌들 가운데 하나다. 성경에 언급된 대홍수와 비슷한 이야기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경건한 사람, 남녀 한 쌍을 제외하고 모두 물 속에 가라앉는 벌이었다. 몇날 며칠이 흘렀는지 알 수 없는 긴 시간동안 비가 그치지 않았고, 그쳤을 때 모든 것은 물 아래 잠겨 있었다.
비가 그치고 여러 날을 망망대해에서 떠돌던 두 명의 생존자는 높은 산 꼭대기에 내렸고, 신전을 찾아 앞으로 어찌 살아가야 할지를 물었다. 어머니의 뼈를 등 뒤로 던지라는 말을 듣는다. 어머니는 대지이며, 어머니의 뼈는 돌멩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신의 지시를 자신들의 해석에 따라 실행했다. 참으로 남자가 던진 돌에서 남자들이, 여자가 던진 돌에서 여자들이 생겨나왔다. 그렇게 돌에서 다시 태어난 인류는 수많은 고통을 이겨낼 만큼 돌처럼 단단해졌다고 한다.
이후 가망이 없는 인류에게 형벌처럼 또 한번의 재앙이 닥친다. 이번엔 대화재였다. 태양의 신과 그 아들이 벌인 일이다. 태양의 신 아폴로는 아들 파이톤에게 태양의 전차를 맡긴다. 아폴로는 아들의 간절한 소원을 이기지 못하고, 아들을 사랑했다면 오히려 만류했어야 할 일을 덜컥 아들에게 맡기고 만다. 경험과 능력이 부족한 애송이에게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태양의 마차를 몰고 하늘을 오르는 말들은 그가 얼마나 무능한지를 단박에 알아버렸고, 그때부터 전차는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 마구잡이로 달려나갔다. 당황한 청년에게 말을 통제할 힘도, 경륜도, 지혜도 없었다. 말들은 길을 멋대로 잡아 때로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길을 달리기도 하고, 때로 지구로 너무 가깝게 달리기도 하였다. 땅 위의 길을 달려가는 태양의 마차 때문에 강이며 바다는 말라버리고, 도시며 숲이며 탈 수 있는 모든 것은 순식간에 재가 되어 버렸다. 대화재의 재앙을 간신히 면한 것들은 검게 불의 흔적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검게 탄 피부를 얻고 살아남긴 했지만 인간들에겐 마실 물이나 먹을 곡식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한없는 가뭄과 기근이 이어졌다.
이번 여름 억수같이 종일 비가 쏟아져 하늘이 뚫렸나 싶을 정도로 퍼붓고 나서는 불볕 더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봄의 대형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홍수진 빗물이 다시 한번 덮치며 산사태가 수도 없이 발생하더니, 이어 태양이 지구를 덮친 듯한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여름은 으레 그런 법이라고 위안을 삼는 것도 웬만큼 일 때 이야기다. 수은주는 밤 깊은 저녁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 모든 게 인류가 저지른 죄 때문에 유피테르가 인류를 벌하려고 마련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하늘의 신이 준비한 형벌과 재난은 여기까지일까? 산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고, 대지진으로 사람들이 쌓아올린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으며, 서로를 죽고 죽이고 굶주리게 하는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화산이 폭발하고 해일이 크게 일어 도시로 밀려든다. 도시의 지반이 갑자기 무너지는 함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대지를 미친 듯이 할퀴고 다니는 태풍이 불고, 끔찍한 회오리바람에 마을과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머지않은 미래에 이런 것들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물과 바람의 재앙, 불과 땅의 재앙을 유피테르가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닐지 두렵다. 해가 갈수록 기후 재난의 강도는 더 커지고 그 빈도는 더욱 잦아지고 있다. 그만큼 인류가 매일 더욱 큰 죄를 쌓고 있는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