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글로벌 물류허브로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컨테이너 물동량 세계 7위이자 세계 2위 환적항인 부산항을 보유하고 있으며, 글로벌 선진 해양도시 평가에서도 10위를 차지한 세계적 해양도시다. 그러나 부산의 물류적 위상과 해양수도로서의 위상 간에는 상당한 격차가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국내 해운 대기업 14곳 중 13곳이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사실은 부산의 해양 관련 지리적·산업적 이점이 수도권 중심 구조를 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다.
해양산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체는 해운기업 즉, ‘선사’다. 선사는 해운산업 생태계에서 모든 의사결정과 자금 흐름의 중심축이다. 선박 건조자금부터 벙커링, 선원 고용, 선박 운영과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활동의 주체이다. 또한, 화주와의 운임 협상과 화물 운송 계약 역시 선사가 주요 당사자로 참여한다. 금융기관이 자금을 제공하지만, 실제로 산업을 움직이는 자금 흐름의 핵심은 선사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양금융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 바로 선사다. 그렇기에 선사의 부재로 인해 물류의 선적과 하역은 부산에서 이뤄지지만, 경영 결정과 자본 흐름의 중심은 여전히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 해운기업 본사 대부분이 서울에 밀집한 이유는 단순한 관성 때문만이 아니다. 서울이 보유한 금융·행정·법률적 인프라, 우수한 인재풀, 글로벌 네트워크 접근성 등 현실적인 강점들이 여전히 부산에 비해 월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특정 기업이 도시 전체를 발전시킨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미국 시애틀은 아마존 본사가 들어서며 글로벌 IT 기업의 허브로 급부상했고, 독일 함부르크의 해운사 하팍로이드는 도시의 경제적 상징이자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에서의 함부르크의 위상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핵심 기업의 이전은 도시의 산업 구조와 경제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부산 역시 HMM 본사 이전을 통해 이러한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HMM 본사의 부산 이전은 그 자체의 상징적 의미 이상으로, 부산 해양산업 생태계 전반에 거대한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선사 본사가 이전하면 정책 금융 보험 회계 법무 등 연관 산업이 따라 움직인다. 이를 통해 해양금융 해상보험 해운 IT 해사법률 연구개발(R&D) 등 관련 서비스, 정보산업이 활성화되고 항만운영, 선박관리, 기자재 생산, 물류·포워딩 등 실물기반 산업이 성장하게 된다. HMM 본사의 이전은 단순한 상징이 아닌, 해운 관련 주요 기업들의 부산 유입을 가속화해 해양클러스터 완성과 지역 산업 생태계의 변화를 유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 부산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과연 우리는 글로벌 해운 대기업인 HMM을 성공적으로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이다. HMM 유치는 부산이 가진 해양수도라는 목표의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다. HMM이 부산으로 이전한 이후, 행정·금융·법률 등 지원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다면 다른 기업들은 결코 부산 이전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HMM의 성공적인 부산 안착과 사업 성공이 다른 선사들에게 확실한 긍정의 메시지로 전달돼야, HMM 외 다른 주요 선사들도 부산 이전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우리 해운을 대표하는 기업인 HMM 이전 문제는 회사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해관계자(Stakeholder)의 경제적 이익에도 영향을 미친다. HMM 지분을 가진 정책금융기관과 시민, 회사 임직원, 운송 화물을 가진 기업고객 등 이해관계자들 모두를 위해서 이번 HMM부산 이전이 기업가치 제고라는 확실한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부산시는 HMM 기업가치 제고라는 측면에서 종전과 달리 과감하고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지난 1차 공공기관 이전을 위해 기울인 정부와 부산시 노력을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HMM 이전을 위해서는 이전보다 훨씬 과감하고 세심한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
HMM 이전으로 부산에 해운 경제활동이 집중되면, 산업이 활성화되고, 그 산업을 따라서 돈과 사람이 자연히 부산으로 모일 것이다. HMM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성공적 부산 이전이야말로 진정한 ‘글로벌 해양수도 부산’이라는 비전의 ‘화룡점정’이다. HMM이라는 하나의 성공 사례가 부산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국내 해운·물류산업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며, 국가균형발전의 모범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 반면, 이 기회를 놓치거나 실패하면 부산의 해운산업 발전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부산은 HMM 본사 이전을 단지 성과로만 보지 말고,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국가적 과제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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