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산진구 당감동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한 식당에는 ‘농부 박 씨’라는 제목의 액자가 걸려 있다. 주인장 부친 이야기다. 백양산 자락의 빈한한 농가에서 태어난 박 씨는 환경을 탓하지 않고 억척스럽게 일해 가족을 부양했다. 16년 전 99세를 일기로 타계하기까지 그의 신조는 “까불지 말고 단디 단디 살아야 배 안 곯는다”였다. 박 씨에게 딸린 식솔은 자식만 쳐도 16명이었다. 16남매 가운데 15번째가 이 식당 주인이다. “이 밥상을 농부 박 씨께 바친다”로 끝나는 일가의 스토리에 손님들은 감동과 경이로움을 동시에 느낀다.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선 식구 6명 이상인 가정이 절반가량일 만큼 흔했다. 당시 가구당 평균 가족 수는 5.2명이었다. 주거 전용 면적 기준 25평인 84㎡가 국민주택이 된 것도 이때부터다. 한 사람에게 필요한 공간을 5평으로 보고 여기에 식구 수를 곱한 값이다. ‘4인 가족’은 1980년대부터 표준이 됐다. 4인은커녕 1인 가구가 대세인 지금까지 ‘차례상 비용’ ‘최저생계비’ 등을 논할 때 대푯값으로 효력을 발휘한다. 심지어 1인당 25만 원인 이재명표 민생지원금조차 ‘4인 가족 기준으로 세대당 최소 100만 원 지급’이라는 틀에서 나왔다. 가정을 이루는 단위가 ‘부모와 자녀 2명’이라는, 거의 반세기 동안 굳어진 고정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때 한국의 평균이었던 4인 가구 수가 급기야 300만 아래로 떨어졌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주민등록인구통계를 보면 올 6월 현재 가구원 수가 4명인 세대는 299만9680가구에 그친다. 4인 가구의 400만선이 무너진 때는 2016년 3월로, 10년도 안돼 100만 가구가 줄어들었다. 지난달엔 299만3545가구로 더 쪼그라들었다. 가구원 수 기준으로 가장 큰 비율을 점하는 건 1인(1023만 가구)이고 그 다음이 2인(609만 가구) 3인(407만 가구) 순이다. 가구원 수와 점유비는 완벽히 반비례한다.

유엔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는 올해 새로운 항목을 추가했다. 가구원 숫자와 행복감과의 연관성이다. 1인이나 소가족보다 4~5명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삶 만족도가 훨씬 높았다. 부모와 자식이 한 집에서 부대끼며 살면 연대감과 행복감이 배가된다는 상식이 재확인됐다. 한국의 평균 가구원 수는 2.2명으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삶 만족도 조사대상국 147개국 중 58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자살률 1위라는 지표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4인 가족’ 혹은 ‘4인용’이라는 용어가 사라지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느낌이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