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꽤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몇 달 전부터 참석자들 일정 조율해서 겨우 성사된 중요한 회의 일정과 친척의 은퇴기념식 일정이 완전히 겹쳐버렸다. 전자를 택하려니 어렸을 때부터 각별하게 지낸 친척이 서운해 할 것 같고, 후자를 택하려니 꽤 힘든 과정을 거쳐 성사된 회의라 번복할 수가 없었다. 업무의 성격과 내용이 너무 다른 공적·사적 일정이 공교롭게도 완전히 겹친 것이었다. 이래도 마음 불편하고, 저래도 어느 한 쪽에선 뒷말이 있을 법한 사정이 생겨버린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많은 결정을 하게 된다. 식사 메뉴와 같은 비교적 사소한 결정에서부터, 직장이나 배우자 선택 등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마주하게 되는 결정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점심으로 선택한 밀면이 별로였다면 다음엔 다른 음식을 먹으면 그만이지만, 이직하고 나서야 이전 직장이 훨씬 더 좋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결혼하고 나서 배우자가 정말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 결정의 대가는 너무나도 크다. 판단과 의사결정의 문제에서 정말 어려운 것은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리에겐 결과가 주어지고, 그 결과엔 긍정과 부정이 뒤섞여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공동연구 회의에 참석하든 은퇴기념식에 참석하든, 한쪽이 좋으면 다른 쪽에선 나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제 심리학 얘기를 좀 해 보겠다. 우리는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의 관계를 수없이 경험하며 살아왔다. 문제는 내 선택의 결과가 늘 옳지만은 않다는 데 있고, 옳은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에는 긍정과 부정의 양가적 측면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즉 해석하는지가 무척 중요하다.
우리는 나에게 발생한 일의 결과, 특히 부정적인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해석한다. 이것을 ‘설명양식’이라고 한다. 설명양식은 설명과 양식 두 가지 의미가 혼합되어 있는데, ‘설명’한다는 것에는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가정이 포함되어 있고, ‘양식’이라는 것은 어떤 패턴으로 굳어진 스타일이기 때문에 변하기 힘들다는 의미가 내재한다.
즉, 우리는 나에게 발생한 일들에 대해 생각할 때, 어떠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패턴이 굳어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양식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 첫째, 내적-외적 차원이다. 이 차원은 결과의 원인이나 책임을 내게로 돌리느냐, 외부로 돌리느냐에 관한 것이다. 구입한 집값이 떨어졌을 때, 내적 설명양식을 가진 사람은 내가 잘못 구입했다고 자책하며, 외적 설명양식을 가진 사람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원망한다.
둘째, 포괄적-특정적 차원이다. 이 차원은 좌절이나 실패를 전체 영역으로 확대해서 보느냐, 그 결과가 발생한 영역으로만 한정해서 해석하느냐의 문제이다. 사귀던 사람과 헤어졌을 때, 포괄적 설명양식을 가진 사람은 애인이 떠나버린 세상에서 이제 본인의 존재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특정적 설명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비록 애인과 이별해 너무 괴롭고 슬프지만 그래도 나에겐 다른 친구들이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일시적 차원이다. 이 차원은 나에게 닥친 부정적 결과를 지속적 혹은 일시적인 것으로 해석할지에 관한 문제이다. 여러 과목 중 한 과목의 중간고사를 망친 대학생이 지속적 설명양식을 가졌다면 이번 학기는 다 망했다고 침소봉대할 수 있지만, 일시적 설명양식으로 해석하면 중간고사는 망쳤지만 기말고사는 더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 설명양식은 우울증과 관련되어 오랫동안 연구되었는데,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본인의 실패나 좌절을 내적, 포괄적, 지속적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모든 부정적인 결과의 원인을 내 탓, 그것도 한 영역이 아닌 포괄적으로, 그리고 끝나지 않을 지속적인 것으로 ‘잘못’ 해석한다.
오늘도 우리는 많은 결정에 직면한다. 어떤 선택이든 완벽하게 좋거나 나쁜 결정은 없다. 아무리 좋은 결과에도 부정적인 면이 있고,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내 마음 덜 다치고 힘들도록, 그 결과를 잘 수용하고 다시 도전하거나 일어설 힘을 얻게 해석함이 옳다.
내 탓만이 능사가 아니다. 겸손도 지나치면 병이듯, 판단과 의사결정의 연속인 우리 삶에서 만사 내 탓만을 한다면 마음이 힘들어서 이 세상 어떻게 살아가겠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