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너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저만 뒤처지고 게으른 거 같아요.”

A 씨가 기운 없이 말한다.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모두가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하셨는데, 정말 다들 그렇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라고 되물으면, 돌아오는 답변이 시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중이다.

과거에는 비교 대상이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친구들이었다. 그들과 자신을 견주며 내가 너무 게으른 것 같고 더 열심히 살아야할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 대상이 유튜브나 SNS 속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휴대전화 화면 속에는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하고, 부유하고, 게다가 멋지고 아름답기까지 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뽐내고 있다. 그래서 거기에 자극받은 우리들은 좀 더 생산적인 삶을 살아가려고 매일 애를 쓴다. 하루 6시간을 내리 공부하고도 집중이 안 된다고 큰일이라는 학생들이나, 퇴근하고 집에 와서 잠시 쉬는 시간이나 심지어 머리를 말리는 짧은 순간조차도 경제 지식을 쌓아야 한다며 초조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맙소사! 하루 6~8시간 집중하고 나면 지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전기만 공급되면 24시간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다. 생산성의 덫에 빠진 분들은 그럼 곧이어 이렇게 반문한다. “그렇게 해내는 사람이 정말 많다니까요. 그러니까 저도 꼭 해내야만 해요!”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의 뇌는 지나친 자극에 노출되면 오히려 불균형이 심해지고 효율이 떨어진다. 여키스 도슨 법칙에 따르면 극심한 스트레스가 오히려 집중력을 저하시킨다고 알려져 있고,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에서는 소화불량, 심한 이명이나 난청 어지러움증 같은 신체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이는 쉬어야할 때라고 몸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럼 눈을 감고 그냥 가만히 쉴 때, 우리 뇌에서는 어떤 작용이 일어날까? 컴퓨터같이 전원이 꺼지거나 절전모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런 압박을 받지 않고 소위 말해 ‘멍 때리기’를 할 때, 뇌는 가장 창조적인 활동을 한다. 미국 신경과 교수인 마커스 라이클은 휴식하는 사람들의 뇌에서 평소와 다른 부위가 활성화되고 에너지가 소비된다는 것을 밝혔는데, 네트워크가 ‘기본 값으로’ 작동한다는 의미로 ‘디폴트 모드’라고 불렀다.

평소에 답이 잘 보이지 않고 막막했던 일이, 휴가지에서 쉬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아무 생각 없이 쉬고 나면 생각이 잘 정리되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빈둥거리면서 쉬는 것은 뇌를 정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의적인 활동을 도와주는 중요한 시간일 수 있다.

일상에서 과도한 소음과 각종 전자기기의 불빛에 지쳐 있다면, 주말에 잠시 짬을 내서 근처 공원을 가보자. 핸드폰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라. 새가 지저귀는 소리,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소리에 집중해보자. 평소에 긴장한 상태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면, 도시의 소음이나 불쾌한 소리들에 귀가 지나치게 민감해진다.

소리를 받아들이는 고막의 긴장도나 림프액의 균형은 모두 스트레스 정도에 영향을 받는다. 크게 신경 쓰는 일이 있거나 과로에 시달리다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끼거나 이명이나 난청을 경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평소에 예민해진 오감은 아무것에도 몰두하지 않는 경험을 통해서 회복될 수 있다.

어린 시절 방학이면 종종 시골의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곤 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시골에서는 그저 배불리 먹고 소에게 먹이를 주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부산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버스 시간을 몇 시간 남기고 항상 멍하니 마루에 앉아 있곤 했다. 그때 나는 시간이 참 천천히 간다고 느꼈고, ‘무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순간이 종종 기억나고 그리운 것을 보면, 현재의 내 삶에서도 그렇게 무료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삶이라는 소음에서 잠시 로그아웃을 해보자. 아마 그 무료함 속에서 진짜 몰입된‘나’를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