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우리말을 배울 때 호칭어가 많아서 어렵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이름을 부르지 않고 ‘교수님’이나 ‘의사 선생님’ 등 직함 호칭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또한 다른 언어사회보다 친족어 호칭도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2인칭 단수 대명사로는 너 자네 그대 당신 어르신 등이 사용되는데, ‘그대’는 15세기, ‘당신’은 16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난다. 이 호칭어들은 시인들의 작품에서도 아름답고 다정하게 표현되고 있다. 류시화 시인의 시선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제목만으로도 시집의 페이지를 펼치게 한다.

이문재 시인의 ‘농담’이라는 시도 떠오른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글이나 노래에서 주로 쓰이는 ‘그대’는 애인이나 어떤 대상을 친근하게 가리키는데, 사전적으로는 벗이나 아랫사람을 대접해 점잖게 높여 가리키는 말을 뜻한다. 반면 ‘당신’은 상대를 소중하게 여겨 높여 부르는 말이지만, 싸움이나 논쟁에서 상대를 낮잡아 부를 때도 쓰인다. 허수경 시인의 ‘혼자 가는 먼 집’이라는 시는 ‘당신’에게서 시작된다.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 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허수경 시인의 ‘당신’은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으로 존재한다. 이와 달리 차도하 시인은 ‘처치 곤란한 시인’이라는 작품에서 자신과 속눈썹 길이까지 같고 눈동자의 둥근 정도까지, 서로의 어둠까지 똑같은 ‘당신’을 노래한다.

“당신은 혼자 따듯한 우엉차를 끓여 마시고/가만히 앉아/차가 몸으로 퍼져나가는 경로를 느껴보는 것을 좋아하고/그런 당신이 유일하다곤 생각해본 적 없죠/그러니 당신과 같은 인간이 나타난대도 놀랄 것도 없지만//당신과 나는 놀랄 만큼 똑같습니다/차를 마시는 시간까지/피가 도는 속도까지”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관찰하고 인정하기 쉽지 않다. 사흘 전 시인들의 작은 모임이 있었다. 조금 늦게 도착한 선배 시인이 땀을 닦으며 발갛게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버스 타고 오는데, 어떤 청년이 나한테 자리를 양보해주지 뭐야.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 그러잖아. 내가 그렇게 늙어 보여? 어르신이라는 말이 너무 생소하더라.”

우리는 자연스레 ‘어르신’이라는 호칭어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어르신은 할머니 할아버지보다 듣기 좋은 호칭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었고, 어른을 높여 부르는 말이니 나쁠 게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노인을 칭하는 순우리말이지만 자신이 늙었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이 듣기에는 거북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처음 마주친 사람이 대뜸 나한테 ‘어머니’라고 했다. 그는 진회색 슈트를 입었고 다소 지친 안색이었다. 나는 미소 대신 “뭐라구요? 어째서 제가 당신의 엄맙니까?”라고 쏘아붙였다. 그가 얼마나 무안했을까. 그날 밤에 후회에 휩싸여 ‘구도시’라는 시를 썼다. 부끄럽지만 중반부만 옮겨보겠다.

“학습지 선생이 바닥에 내려놓았던 묵직한 갈색 가방을 메고/전단지를 들고/ 구층에서 내렸다//저 사람을 내가 곤혹스럽게 했던 것이다/학습지 회사에서 고객을 부르는 호칭을 어머니로 통일했을지도 모르는데//저기요나 아줌마라고 불린 것보다 나을까/어머니와 엄마는 성질이 다른데/나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나 자신도 모르는데”

상대방을 부르는 말이 복잡하고 번잡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요즘 나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어를 애용한다. 마주치는 모든 이들한테 배울 점이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솔직히 나 편하려고 이러는 면도 있다. 연민을 간직하며 애틋하고 다정하게 불러본다면 누구든 귀를 기울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