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인 근로자 대규모 체포·구금 사태가 수습 국면에 돌입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7일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300여 명이 구금된 사태와 관련 “석방 교섭이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앞서 미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지난 4일(현지시간) 예고없이 합작공장에 대규모 단속을 감행해 475명을 체포했다. 이 중 300여 명은 한국 국적자로 확인됐다. 이들 중에는 B-1(단기 상용)비자 또는 전자여행허가증(ESTA)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입국한 현대차·LG엔솔 본사 파견인력도 포함돼 있다. 이번 단속은 단일 사업장 대상으로는 최대 규모 작전이었다.

미국 이민 단속 당국이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에서 벌인 불법체류·고용 단속 현장 영상과 사진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불법 체류자인듯”이라며 “(ICE는) 그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비자 조건을 위반한 정당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단속 과정에서 한국 정부나 해당 기업에 사전 통보가 없었다. 또 영사 접견 이전에 이들을 쇠사슬로 묶고 발에 족쇄를 채우는 동영상까지 공개됐다. 인권 침해 논란을 넘어 동맹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 정부는 지난달 25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산 에너지 구매 1000억 달러를 제외하고도 총 5000억 달러(약 700조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막대한 돈만 쓰고 돌아온 것은 쇠사슬 굴욕”이라고 논평했다.

미 행정부 요청에 따라 이뤄진 대규모 투자 현장에서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은 유감이다. 현대차와 LG엔솔은 내년 완공을 앞두고 공장 내 전력 설비 설치 등 공장 건립 막바지 점검을 위해서 핵심인력을 파견했다. 미국 내 관련 전문가가 대체하기 어려운 일로 알려졌다. 더구나 그동안 미 정부가 전문직 취업(H-1B) 비자를 제대로 발급하지 않아 투자 기업들이 관행적으로 ESTA를 이용했다. H-1B 비자는 미국에서 연간 약 8만5000명에 한해 제한적으로 발급된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미 정부를 신뢰하고 대규모 투자를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비자와 관련한 법적 리스크로 인해 출장 인력을 줄이면 현지 공장을 건설하거나 완공 후 운영이 쉽지 않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기업들도 리스크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트럼프 정부가 노동 허가 절차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투자만 요구하면 어떤 기업이 미국에 가겠는가.

합작공장은 조 바이던 전 미 대통령이 제조업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내세웠던 곳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년 중간선거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 이번 사태를 일으켰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우원식 국회의장이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가한 것에 미 정부가 불만을 드러냈다고 분석한다. 우리 정부는 대규모 단속 배경을 면밀히 파악해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 비자 체계를 개선해 현지 기업 활동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조치를 취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