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부산 중구 남포동 백화점의 13층 전망대에 올랐다. 정면으로 바다 위에 단단히 걸쳐진 영도대교가 있었고,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자 부산 타워와 용두산이 차분히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앞자락에 바다를, 뒤편에 산을 동시에 품은 대도시가 또 있을까.” 감탄과 함께 문득 논어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지자요수(智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 이 오래된 구절은 풍경 속에서 한층 더 분명해졌다. 물처럼 유연하게 흐르며 길을 찾아 나아가는 지혜와, 산처럼 고요히 머물며 넉넉함을 지닌 인자함이 자연과 도시의 경계에서 조화로운 음악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8월의 뜨거운 바람과 함께 자연을 그린 작품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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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멘델스존. 위키피디아 |
낭만주의의 정서를 우아하고 세련된 선율로 그려 낸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의 서곡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는 괴테의 같은 제목 두 개의 시(時)를 바탕으로, 정적에 잠긴 바다와 이어지는 환희의 항해를 음악으로 그린 작품이다. 첫 부분은 깊고 무거운 현악 선율 위에 플루트와 바순이 머뭇거리며 등장해, 숨 막히는 고요와 불안을 표현하고, 이어 바람의 기운을 상징하는 선율이 차츰 더해지며 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당당한 D장조 선율 속에 출항의 기쁨이 터져 나오고. 마지막에는 환희의 팡파르가 잦아들며, 처음의 불안과는 다른 평화롭고 안정된 고요로 마무리된다.
바다가 지닌 역동성과 해방감을 담은 이 곡은 마치 정체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멘델스존은 그 흐름을 음악 속에서 치열하게 묘사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방향을 향한 용기를 전한다.
600여 곡의 아름다운 가곡을 남긴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의 ‘산(Die Berge)’은 산이라는 존재가 주는 힘을 음악과 시의 언어로 형상화한다. 노랫말은 하늘을 향해 치솟는 듯한 인간의 갈망에서 시작해, 곧 다시 땅 위에 단단히 뿌리내린 존재의 자각으로 이어진다. 산은 높이 솟아올라 하늘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그 뿌리는 대지를 깊이 꿰뚫고 있다. 슈베르트는 담백한 노래와 피아노 선율로 이 긴장과 균형을 표현했다. 절제된 화성의 안정된 진행은, 인간이 영원히 흔들림 없는 바탕 위에 서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닮아있다. 동시에 절벽 위에서 심연을 내려다보며 느끼는 두려움과 환희가 교차하는 순간, 노래는 고요한 인자함을 넘어 숭고한 인내로 향하고 있다.
산은 고통을 잊게 하고 새로운 기쁨을 불러오는 정신적 거처가 된다. 슈베르트가 그려낸 산은 결국 인간 내면의 확고함과 생명의 은유로 드러나며, 어진 사람은 그 산을 사랑함으로써 더욱 굳건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이렇게 음악은 우리 삶의 감정과 사유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언어 위의 언어다. 멘델스존의 바다가 희망과 용기를, 슈베르트의 산이 인내와 위로를 전하는 것처럼, 음악은 풍경을 그린 선율을 통해 우리를 어루만진다.
‘지자동(知者動), 인자정(仁者靜), 지자락(知者樂), 인자수(仁者壽)’. 지혜로운 사람은 활발하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이치를 즐기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산다고 했다. 클래식 음악은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치며, 때로는 깊이와 고요함을 지녔다. 듣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기쁨이 있고,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오래된 울림이 있다. 자연과 인간, 윤리와 미학을 모두 담은 클래식 음악과 함께 오래도록 즐거운 인생을 누린다면, 그것은 존재의 깊이를 확장해 가는 더없이 풍요로운 삶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