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신공항 이야기가 나온 지도 어느덧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수많은 논쟁과 갈등이 이어졌지만, 지금까지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는 사실은 부산시민으로서 답답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 때가 있다.
2002년 김해공항 인근에서 중국 민항기가 추락해 129명이 목숨을 잃은 비극은 김해공항의 안전성 문제 논의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 활주로가 산으로 둘러싸인 입지 조건, 기상 변화에 취약한 환경 등은 그때부터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이후 2006년 정부가 신공항 건설을 검토하면서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이 후보지로 거론됐다. 하지만 정치적 셈법과 지역 갈등이 얽히며 논의는 표류했고, 그 과정에서 김해·밀양·가덕도를 둘러싼 소모적 논란만 되풀이됐다. 그러다 2021년 3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드디어 논쟁은 매듭지어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법 통과 4년이 지난 지금, 가덕도신공항은 이제 공기(工期) 논란에 발이 묶인 채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가덕도신공항에 꼬리표처럼 붙는 경제성과 공사 난이도 문제 등에 이어 최근 불거진 쟁점은 ‘공사 기간’이다. 정부는 애초 84개월(7년) 완공안을 제시했으나, 건설업계는 바다 매립과 활주로 건설이라는 특수한 조건, 안전성 확보를 위한 기술적 요건 등을 감안하면 최소 108개월(9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5월 말 공사 컨소시엄을 주도한 현대건설이 사업에서 발을 뺀 이유다. 현실적인 공사 기간이 보장되지 않으면 참여가 어렵다는 것이 건설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실제 현대건설 불참 선언 이후 국토부가 컨소시엄 소속 건설사인 대우건설 포스코이앤씨 등과 접촉했지만 업계는 84개월 불가를 주장하며 공사 참여를 꺼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가덕도신공항은 다시금 ‘84개월 vs 108개월’이라는 수치 논쟁에 갇혀 버렸고, 정작 중요한 착공은 또다시 늦춰지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신공항 논의가 정치적 이해관계 등에 휘둘리며 본질을 잃어왔는데, 이제는 공사 기간을 두고 한 치 양보 없는 논쟁만 되풀이하는 것이다.
김해공항은 이미 포화 상태에 도달했다. 활주로 확장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국제선 수요는 지나치게 인천공항에 집중되어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의 자료를 보면 인천공항의 지난해 국제선 이용객 수는 7000여만 명으로 국내 전체 공항 비중의 77%인 반면 김해공항은 900여만 명(11%)이다. 김해공항을 이용하는 승객 수는 꾸준히 늘어 지난해 전체 여객 수는 1500만 명을 넘어섰지만, 공항 주변 장애물과 활주로 시설 등으로 시간당 슬롯수(이착륙 횟수)는 18회로 제한돼 있다. 시설 확충의 여지는 거의 없어 국제선 출발이 집중된 오전시간 대 공항은 성수기·비성수기 막론하고 도떼기 시장과 마찬가지다. 안전 문제도 여전하다. 이처럼 명백한 한계 앞에서 가덕도신공항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가덕도신공항은 단순히 김해공항을 대체하는, 단순한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아니다. 동남권은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국가 프로젝트다. 24시간 운항이 가능한 대형 활주로는 인천공항 일극 체제를 완화하고, 국제선 수요를 분산시켜 항공 인프라의 균형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다. 가덕도신공항이 북항재개발과 신항만 물류단지, 동남권 산업 벨트와 맞물려 항공·해운·철도가 결합한 트라이포트 체계를 구축한다면, 부산은 단순한 항구 도시를 넘어 동북아 물류·관광·비즈니스의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경제적 파급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공사 과정에서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지역 건설업계와 서비스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완공 이후에는 국제공항으로서 지속적인 고용과 투자가 이뤄질 것이며, 글로벌 기업의 유치와 관광 수요 확대도 기대된다. 무엇보다 가덕도신공항은 수도권에 집중된 대한민국의 구조적 한계를 해소하고, 국가 균형 발전을 실현할 핵심 인프라로 기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여전히 ‘시간’에 발목이 잡혔다. 물론 원칙과 신뢰 유지를 위해 84개월을 고수해야 하느냐, 현실적 안전 확보를 위해 108개월로 연장해야 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착공을 지연시키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하루빨리 전문가의 검증을 거쳐 현실적이고 안전한 일정과 공법을 마련하고, 이를 시민에 투명하게 알려야 할 것이다.
부산시민이 바라는 것은 단순히 ‘더 빨리’가 아니라 안전하고 품질 높은 공항을 ‘제대로’ 완공하는 것이다. 정부·부산시·국토부·건설사 모두가 공동의 목표 아래 책임 감 있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부산은 또다시 국가적 기회를 잃을 수밖에 없다. 공허한 논쟁을 끝내고 이제는 실질적인 실행 단계로 나아가야 할 때다.
임은정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