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지난 26일 막을 내렸다. 서른 번째 BIFF.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게 있다. 바로 ‘초심’이다. BIFF가 첫발을 내디딘 ‘1996년 9월’ 역시 숱한 역경을 딛고 나온 결과였다. 그런 만큼 ‘그때’를 되돌아보는 것은 의미 있다. BIFF를 또 다른 30년, 그리고 100년 넘게 이어가야 하는 까닭이다.
흔히 BIFF의 창설 주역으로는 김동호 초대 집행위원장과 이용관·김지석·전양준 등 BIFF의 영화인을 꼽는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니다. 나는 여기에 ‘결정적인 장면’을 보여준, 다른 이들을 추가한다. 당시 문정수 부산시장과 현 BIFF 이사장이자 BIFF 출범 당시 부집행위원장이던 박광수 감독(이하 관련 인사의 직함 생략)이다.
사실 ‘서울국제영화제’도 열릴 뻔했다. 이 영화제가 열렸다면 영문 약칭은 ‘SIFF(Seoul International Film Festival)’이었을 터. 1995년 무렵 이 영화제의 창설 논의가 시작됐다. 관련 세미나도 몇 차례 열렸다. 부산에서 영화제 개최를 고민하던 비슷한 시기다. ‘서울 중심 국제영화제를 만들고, 서울을 한국 영화 국제화의 허브로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한국극장협회와 한국영화배급협회가 반대했다. 영화의 상업적 상영 차질로 말미암을 수익성 침해, 예술·독립영화 확산에 의한 시장 위축, 새로운 영화 세력 부상에 따른 기득권의 방어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제를 열려면 이들 단체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급기야 이들 단체장은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소속 조순 서울시장을 찾아가 ‘아주 격렬하게’ 난리를 피웠다. 이에 놀란 조순 시장은 결국, 서울영화제 출범 계획을 접고 말았다고 한다.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 소속의 문정수는 달랐다. 문정수는 때 마침 부산에 영상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BIFF 조직위원장도 선뜻 맡았는데, BIFF 관계자들과 함께 영화제 개최 관련 협조 요청 차 예의 극장협회 회장, 배급협회 회장을 찾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문정수는 그 자리에서 두 회장으로부터 1억 원씩 후원 약속까지 받아냈다. 마침내 1996년 2월 부산시청에서 사단법인 BIFF 창립총회가 열린다. 제1회 BIFF 개막 7개월 전이었다.
하지만 BIFF로 가는 길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국제영화제 운영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이때 ‘BIFF의 설계자’ 박광수가 팔을 걷어붙인다. 박광수는 당시 국내 영화감독으로 외국에 많이 알려졌다. 외국 영화제에 가장 많이 참석한 감독이기도 했다. 박광수는 1996년 4월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서 만난 폴 리, 그 해 6월 LA영화제에서 만난 한국계 스태프 임현욱을 BIFF에 합류시켰다. 이들 한국계 미국인들의 도움으로 제1회 BIFF의 팸플릿 제작, 개막작 감독과 배우 및 스태프, 외신 기자의 초청 작업 등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부족한 것은 그렇게 채웠다. 수영만요트경기장의 야외 스크린도 박광수가 고안했다. BIFF 성공의 열쇠가 된 그것이다. 당시 극장 상영관의 열악한 시설로 고민하던 박광수는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눈여겨본 야외 상영관을 떠올렸다. 개막작 상영 때 수영만 요트경기장의 바다를 배경으로 누워있다가 서서히 일어나 세워진 스크린으로 빛이 투과되는 장면에 5000여 관객은 탄성을 질렀다. 지금은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으로 바뀐 부산프로모션플랜(PPP) 역시 박광수의 작품이다. 그때만 해도 아시아는 물론 국내 영화계에서 파이낸싱 마켓은 아주 생소했다. 박광수는 영화감독 자격으로 네덜란드 로테르담영화제의 ‘시네마트’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이를 BIFF에 적용했다. PPP는 BIFF의 위상을 단기간에 끌어올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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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미래를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BIFF는 최근 10년 사이 조직 안팎의 갈등과 위기를 겪었다. 2014년 ‘다이빙벨’ 상영 외압 논란, 2015년 부산시의 BIFF 집행위원장 사퇴 권고, 2023년 BIFF 운영위원장 신설 논란과 수뇌부 공백 사태, 그리고 BIFF 이사회가 꾸린 혁신위원회의 자질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따지고 보면 화살은 BIFF 조직 내부의 문제로 향한다. 그때 조직의 투명한 시스템을 갖추는 데 정말 충실했는지, 조직의 사유화 논란에서 자유로웠는지 되짚어보아야 했다. 지나치리만큼 스스로 엄격해야 했다. 이제 희망의 메시지도 있긴 하다. 올해 5주년을 맞은 ‘동네방네 비프’는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지점이다. 비경쟁 영화제를 표방하는 BIFF는 올해 경쟁부문을 신설했다. OTT 작품 상영 등 영화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려는 움직임도 적극적이다. 지난 30년의 성과와 가치, 문제점 등을 따져보고 새 각오로 또 다른 도약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지역사회와 함께.
오광수 편집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