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말 이탈리아 피렌체에 도미니크회 수도사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대중 인기를 얻었다. 그는 교황과 메디치 가문을 비판했다. 교회는 부패했고 메디치 가문은 무능하다며 공격했다. 당시 피렌체를 지배한 메디치 가문이 돈과 예술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며 개혁을 부르짖었다. 두 세력 때문에 곧 하나님이 심판을 내릴 것이라고 예언했다. 프랑스 왕 샤를 8세가 1494년 이탈리아를 침공했다. 피렌체는 무기력했다. 그의 예언이 적중했다. 이때부터 그는 ‘하나님 예언자’로 불렸다. 왕 신앙심에 호소하는 설교로 프랑스군의 약탈을 피할 수 있었다. 실권자인 피에로 데 메디치를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했다.
사보나롤라는 귀족정치를 배격하고 35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하는 대평의회 중심의 정체를 추구했다. 대중 연설을 잘해 가는 곳마다 구름 인파가 모였다. 1497년 사육제 마지막 날 시뇨리아 광장에서 르네상스 시대 회화, 점성술 책, 음란물, 가발, 도박 도구, 사치품 등을 태우는 ‘허영 화형식’을 열었다. 그의 권력이 절정에 달한 순간이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의 권력은 경쟁자가 나타나자 무너지기 시작했다.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이 사보나롤라에 공개 도전장을 던졌다. “누가 진정한 하나님 예언자인지 ‘불의 심판’을 받자”고 제안했다. 장작더미에 불을 붙여 길을 만들고 그곳을 걸어 무사히 통과하는 사람이 진짜 하나님 예언자라는 주장이다.
1498년 4월 7일 심판의 날에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수도사들은 교리 논쟁까지 벌이며 심판을 지연시켰다. 예정된 시간보다 한참 지나 봄비가 내렸다. 사보나롤라 측 수도사들이 “하나님이 불의 심판을 원하지 않는다”고 외쳤다. 이 말을 들은 피렌체 시민은 사보나롤라 측을 향해 돌을 던졌다. 그는 결국 화형을 당했다.
사보나롤라는 종교개혁 불씨를 지폈지만 대중에 영합한 정치로 비판받았다.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를 쓴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그를 ‘포퓰리스트’로 봤다. 시류에 편승한 기회주의자로 대중의 일시적 열광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말뿐인 예언자는 인민의 신뢰를 상실하는 순간 몰락했다”고 평가했다.
최근 한국 정치를 보면 민중 삶과는 거리가 먼 말의 성찬이 주를 이룬다. 대중 인기 경쟁이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 정치의 본령은 온데간데없다. 선명한 말은 속이 시원할지 모르나 남는 것은 없다. 결국엔 그 말 때문에 몰락하는 포퓰리스트가 있을 뿐이다.
최현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