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초혁신경제 15대 선도 프로젝트 중 5개 과제를 우선 발표했는데 그중 전력반도체(Power Semiconductor·실리콘카바이드)를 선정해 2030년까지 국산화 20% 기술 자립을 이루겠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 전기차 스마트그리드 데이터센터 등 전력 수요와 효율화 압박이 동시에 높아지는 시대에, 전력반도체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 축이다. 반도체 생태계에서 전류·전압을 제어하고 관리하는 기술이야말로 반도체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정부나 대기업이 “전력반도체의 국산화를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막상 핵심기술을 개발한 강소기업이 실제 제품을 검증하고 시장에 내놓는 과정에 장애가 너무 많다. 특히 국내에서 ‘실 제품 테스트 인프라 부족’은 강소기업이 성장하는데 치명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첫째, 강소기업이 개발한 전력반도체 제품을 대기업 또는 중견그룹에서 직접 테스트해줄 여지가 거의 없다. 대기업·중견기업은 강소기업에서 개발된 초도 제품의 리스크 문제 때문에 검증된 외산 (중국산 포함)을 사용한다. 즉, 책임과 비용 부담이 강소기업 제품을 받아주기 어렵게 만든다.
둘째, 정부 과제로는 보통 기술 개발 초기, 또는 시제품화 수준까지의 지원은 있으나 현장 수준의 인증·신뢰성 평가, 장시간 내구시험 등 후속 검증 단계에 필요한 예산은 부족하다.
셋째, 팹리스에서 설계한 고전압(High voltage) 전력반도체 소자 생산을 제대로 할 파운드리 회사가 아직 국내에는 없다. 필자가 소속돼 있는 협회의 팹리스 회원사가 3300V 급 이상의 전력반도체를 생산하려고 해도 국내 파운더리가 없어 해외업체를 섭외 중인 게 한 예이다. 이러한 강소기업이 외국 파운드리에서 소자 생산 시 물류 리스크와 정보 유출을 감수해야 한다. 이에 ‘전력반도체 20% 국산화’를 외치는 정부 정책은 실효를 담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본은 OSAT 등 후공정(패키징) 업체들이 연합체를 구성해 정부 지원을 요청하고 공동 설비 조달, 시험·검증 협업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산업혁신투자기구(JIC) 등을 활용해 전략기업에 보조금 지분투자 인수지원 등을 병행하며, 핵심 소재·부품 육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또한 일본 경제산업성은 내년에 자국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에 1000억 엔 지원을 법적으로 보장하겠다는 보도를 내기도 했다. 중국은 내수 우선 자급·자립 전략을 강하게 밀고, 가격 경쟁력 및 보조금 정책을 통해 자국 반도체 산업을 보호·육성한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외국 기업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든다는 평가도 있다.
이들 국가 전략은 단순 보조금 수준을 넘어, 강소기업과 대기업·중견기업 간 연결 고리, 검증 인프라 집중 구축, 시장 보호·우선 사용 규제 등을 복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전력반도체의 국산화를 위해서는 ‘인센티브 구조’와 ‘필요한 제도 설계’를 충분히 활용해야만 한다. 먼저 정부 연구개발(R&D) 과제를 수행할 때 대기업·중견기업이 수혜를 얻기 위한 조건으로 중소기업 제품을 검증해주는 ‘공동 실증’ 참여 조항을 포함할 수 있다. 이어 대기업·중견기업과 강소기업을 매칭해주는 공공 중계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이 기구가 시험 요청, 조건 협의, 비용 조정, 품질 책임 소재 조정 등의 역할을 담당해 양자 간 소통 장벽을 낮춘다. 그 다음으로는 대기업·중견기업이 중소기업 제품을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해나 불확실성에 대해서 정부가 일정 부분 보증 또는 보험을 제공하는 제도를 설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나 공공기관, 심지어 대기업 내부 조달 규정에 국내 전력반도체 강소기업 제품의 우선 구매 또는 사용 의무 조항을 둘 수 있다. 대기업·중견기업이 자사 시스템에 들어갈 부품이나 모듈 중 일정 비율은 국산 강소기업 제품을 채택해야 한다는 준칙을 법제 또는 정책 권고 수준에서 마련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이 국내에서 생산된 전력반도체의 수요·공급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국내 몇 안되는 전력반도체 강소기업은 성장할 수 없고 전력반도체 국산화도 진정 어렵게 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국내에서도 검증되지 않는 전력반도체를 해외에 수출하기는 어렵다. 이에 중앙정부나 전력반도체를 미래 먹거리로 키우고자 하는 지방정부가 ‘공정한 시험의 기회’를 보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는 다면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결국 해외 의존, 수입 장벽, 비용구조 열세 속에서 도태될 것이다. 전력반도체 20% 국산화를 위해 제도적 유인과 책임 설계, 그리고 각 주체의 협력과 참여를 이끌어낼 전력반도체 관련 협회·학회, 지자체 그리고 중앙정부의 지혜가 필요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