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 한국산업은행 회장이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동남권투자공사를 산은 자회사로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 회장은 “자본금을 많이 출자하다 보니 (자회사) 형태가 될 것”이라며 “정부 정책이 결정되면 출자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동남권투자공사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산은 이전 대신 부산에 별도로 세우기로 한 국책금융기관이다. 부산을 수도권 일극에 대항하는 해양수도로 완성하는데 필요한 핵심 퍼즐이기도 하다. 그런데 독립기관이 아니라 산은 자회사 형태라는 구체안이 기관 대표 입에서 나왔다. 부산으로선 우려가 현실이 된 분노와 허탈감을 감출 수 없다.

박상진 한국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남권투자공사는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부터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신호가 감지됐다. 이 대통령이 분명 ‘국책은행’이라고 했는데도 어느 순간 기관 성격이 변질되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업무보고에서 설립 형태를 ‘은행 신설’ 외 ‘산은 등 정책금융기관의 체계 개편을 통한 지역금융 확대’를 언급할 때부터 심상찮았다. 독립 조직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어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은 은행이 아닌 공사로 추진한다는 사실을 공식화 했다. 김경수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은 한술 더 떠 ‘5극3특’ 권역별 투자공사 계획을 보고했고, 이번엔 아예 산은 자회사다. 박형준 부산시장 표현을 빌리면 고래에서 참치로, 멸치로 쪼그라들었다가 결국 ‘송사리’가 되고 말았다.

현재 발의된 동남권투자공사 법안에는 출자금 3조 원을 산은 뿐만 아니라 기업은행·수출입은행·지자체가 공동 출연하게 돼 있다. 산은 단독 출자가 아닌 만큼 자회사 편입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산은의 부산 이전 백지화를 공식화 한 산은 회장이 동남권투자공사 설립에 협조하기는커녕 이를 조직 확대 기회로 이용할 참인가. 산은 일부를 떼내 한국정책금융공사를 만들었다가 기능 중복을 이유로 6년 만에 다시 산은에 흡수시킨 선례가 있다. 기존 산은 지점을 자회사로 분리시켜 ‘모피아(기획재정부 출신 관료)’를 위한 자리를 만들었다가, 여의치 않을 땐 없애면 그만이라는 생각인가. 이것이 김민석 국무총리가 대정부질문에서 말했던 ‘산은 이전 이상의 특화된 고용창출 효과를 내는 금융기관’인가.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전임 윤석열 정부에서 행정적인 절차를 거의 마친 산은 본사의 부산 이전을 끝까지 반대하고 무산시킨 당사자다. 그 반대급부로 동남권투자은행을 제시했으면 그것이라도 충실하게 이행하는 게 도리다. 그러나 집권 5개월도 안돼 대통령이 임명한 해수부 장관, 금융위원장, 지방시대위원장, 산은 회장 등 관련 기관장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은행이 아닌 공사, 독립기관도 아닌 자회사 설립안을 내놓았고 이마저도 하나가 아닌 전국 각지에 5~8곳을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다. 330만 부산 시민이 묻는다. 처음부터 이럴 계획이었나. 이게 이 대통령의 뜻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