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10월 31일~11월 1일)를 전후해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 외교전이 펼쳐질 운명의 한 주가 시작됐다. APEC 주간은 27일부터 시작되지만, 본 무대는 각국 정상의 양자 혹은 다자 회담이다. 29일은 한미(경주), 30일은 미중(부산), 내달 1일은 한중(경주) 정상이 만난다. 30일엔 한일 정상회담도 유력하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한국이 주최하는 첫 대규모 외교의 장이다. 이 대통령은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아세안(ASEAN) 및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를 갖고 APEC 전초전을 치른다. 그야말로 외교 슈퍼위크다.

오는 31일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사진은 왼쪽부터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는 이재명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 외신종합

이번 경주 APEC 정상회의는 미국과 중국이 유사 이래 가장 격렬한 무역 전쟁을 벌이는 와중이어서 이목이 더 집중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대좌는 2019년 이후 6년 만이고, 트럼프 재선 이후로는 처음이다. 세기의 미중 회담 장소가 부산으로 잡힌 점도 주목된다. 이번 회의에는 캐나다 호주 등 21개 회원국 정상을 비롯해 아랍에미리트(UAE) 왕세자,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등 정재계 거물이 대거 모여 혁신과 번영 방안을 논의한다. 2005년 부산 이후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APEC이 세계를 움직이는 ‘경주 선언’ 혹은 ‘부산 선언’으로 이어진다면 의의가 클 것이다.

하지만 기대 못지 않게 불안 요소 또한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한미간 통상 협상부터 그렇다. 원자력 협정 개정 등 핵 안보 분야는 대략 사전 합의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으나 관세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지난 3개월간 계속된 실무협의에도 투자 규모, 투자 방식 등에 이견이 여전하다. 미국은 3500억 달러(500조 원)를 가급적 현금으로 단기간 내 투자 완료하기를 원하지만 한국은 국가 재정 여력과 외환보유고 한계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라 일컬으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을 원하는 점도 한반도 안보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관세, 희토류 수출, 반도체 기술, 대만 문제 등으로 사사건건 대립하는 미중 정상이 부산 회담에서 어떤 성과를 낼 지도 관심사다.

APEC은 세계 최대 지역협의체로, 여기서 결정되는 사안이 세계 외교 안보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이번 회담을 통해 글로벌 무역과 한국의 통상 및 안보 지형이 재설정될 수도 있다. 유례 없는 미중 갈등 속에서 선택의 압박은 강해지고, 한미 통상 협상 같은 현실적 난관은 험난하다. 한미 한중 한일 미일 미중 등이 서로 협력하는 듯 하면서도 견제하는 치열한 외교 무대가 곧 펼쳐진다. 이 대통령이 이 관문을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따라 향후 5년 한국의 외교 안보 통상 방향이 결정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가장 중요한 건 국익이다. 이 대통령이 천명한 실용외교가 거대한 불확실성을 푸는 열쇠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