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서 과학혁신은 알게 모르게 세상을 변화시키고 우리 생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금은 인터넷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차를 모는 운전자들이 내비게이션으로 길 안내를 받는 것이 자연스럽다.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차량이 알아서 목적지까지 가는 날도 멀지 않았다.
최근에는 생성형 AI(인공지능)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점차 일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공상과학 소설 속의 황당한 이야기마저 현실로 이끄는 과학혁신의 세상이 올 법하다. 각 나라에서 도전적 연구개발(R&D) 체제와 연구혁신 생태계 확장에 주력한 결과다.
‘혁신·도전형 R&D’의 산실인 DARPA(미국 국방성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조직 문화와 정신을 새삼 떠올린다.인터넷은 물론 USB 플래시드라이브, 마우스, 전자레인지, GTS, 태양열판, 탄소섬유, 수술로봇, 드론, 음성인식기 등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되었다가 세상을 바꾼 압도적 기반기술들이 DARPA 연구에서 시작됐다.
DARPA(최초 명칭은 ARPA)는 1957년 구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하자 충격을 받은 미국이 우주와 국방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1958년 NASA(우주항공국)와 함께 출범시킨 조직이다.
무엇보다 ‘용감한 기업가적 혁신성’을 보장하는 인적 운용과 실패의 가치를 인정하는 조직 문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최고의 프로그램 매니저는 자유분방하지만 목적 달성에 광적으로 열정적인 사람이다.”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하는 프로그램 매니저(PM) 제도를 운영하는 DARPA가 원하는 인재상이다.
자체 연구 설비 없이 철저하게 외부 자원을 활용하고 소수 정예의 PM(전원 특채) 활동을 집중 지원한다. 정부 조직이지만 기업보다 더 기업 같은 조직이다. 미래 군사적·기술적 이슈를 파악하고 대응책 발굴에 나서는 대신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업계나 각 군의 R&D 조직에 맡겼다.
정부와 대학, 기업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의 DARPA 연구활동에는 외부 입김은 물론 1000만~4000만 달러의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에도 예비타당성조사가 없다. 독립성을 갖춘 유연한 조직 구성과 자율적인 의사 결정 체제를 바탕으로 오로지 미래 이슈 선점 임무 수행에 필요한 과학기술을 연구할 뿐이다.
스티브 잡스 등 진취적인 기업 활동가들이 민간에 전파된 연구 성과물을 제품으로 사업화해 세상 사람 삶의 형태를 일시에 바꿨다.
주요국들은 ‘DARPA 모델’을 적용한 ‘혁신·도전형 R&D’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국방부 국방첨단기술연구원 등이 ‘한국형 DARPA’ 구축을 목표로 관련 시스템을 참고했다.
정부는 내년도 주요 R&D 예산안을 30조1000억 원으로 배분했다. 전년도보다 21.4% 증가한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경제·사회 대전환을 이끌 AI에 2조3000억 원을, 기초과학 탐구 부문에 3조4000억 원을 각각 투자한다고 한다. 지역이 스스로 R&D를 발굴·기획해 그 지역에 특화된 기술을 개발하는 ‘지역자율형 R&D’를 도입해 1조1000억 원을 투입한다니 주목할 만하다.
이제는 연구개발 생태계에 ‘한국형 DARPA’ 문화가 가능한지 따져볼 일이다. 실패를 좀처럼 용인하지 않고 정권에 따라 정책 방향이 춤추는 풍토 때문이다. 에너지 분야만 해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원자력 정책 방향이 다르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면 앞뒤 가리지 않고 공격부터 하는 분위기에 연구자들은 몸을 사린다. 당장 체질이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단 정치적 셈법보다 경제적·과학적 관점에서 R&D를 진행하는 풍토 조성이 필요하겠다.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에 없는 기술로 최고를 만드는 혁신적·도전적 연구생태계’가 요구된다.
미래 융합형 첨단기술 선점이 중요한 기술패권 경쟁시대 국민 누구나 과학혁신의 가치에 관심을 갖고 그 과실을 함께 누리는 변화를 갈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