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도시는 저마다 브랜드를 갖는다. 뉴욕은 ‘월가’, 런던은 ‘더 시티 오브 런던’으로 상징된다. 두바이는 2004년 두바이국제금융센터(DIFC) 조성 이후 중동을 대표하는 금융허브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부산은 어떤 위상을 가져야 하는가.
글로벌 해양금융허브가 답이 될 수 있다. 부산은 이미 세계가 인정하는 해양도시다. 세계 7위 컨테이너 항만과 해양산업 클러스터를 갖췄다. 해양도시 경쟁력 지표인 메논 이코노믹스 보고서에서도 종합 10위(아시아 4위), 해양기술 부문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다만 금융 및 제도 영역의 평가는 아쉽다. 세계적 기술 수준을 뒷받침할 금융과 제도의 토대가 여전히 미완성인 셈이다.
2009년 금융중심지 지정 이후, 부산은 부산국제금융센터(BIFC) 준공, 정책금융기관 집적, 해양금융 특화 전략, 금융인재 양성, 국제 네트워크 확대 등을 통해 정책금융 및 해양·파생 특화금융 거점으로 성장했다. 부산 남구 문현금융단지에는 40여 개 금융기관이 입주해 약 5500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그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지수(GFCI)가 25위에 오른 것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다.
그럼에도 부산이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금융도시인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금융중심지는 단순히 건물과 기관의 집적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본과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 복잡한 금융 구조와 혁신 서비스의 안정적 작동, 무엇보다 국제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법과 제도가 자리잡아야 한다. 글로벌 투자자에게 익숙한 법적 환경이 없으면 해외 자본은 머뭇거리고 글로벌 기업은 떠난다.
이 점에서 두바이 사례는 시사점이 크다. 두바이는 연방법을 개정해 자국법과 분리된 금융구역인 DIFC를 세웠다. 그 안에서는 영미법이 통용되고, 독립된 행정 감독 분쟁해결 체계가 작동한다. 기업에는 50년간 법인세 면제라는 파격적인 혜택도 제공했다. 그 결과는 눈부시다. 6000개 이상의 기업에서 4만 명 이상이 근무하는 중동의 대표 글로벌금융 허브가 됐고, 후발 금융도시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꼽힌다.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베트남 호찌민 등이 두바이식 모델을 참고하고 있다. 호찌민은 영미법 도입에 대해 신중하면서도, 점진적 제도 개편을 통해 독립적인 거버넌스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글로벌 해양금융허브로서 부산도 이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선박금융의 조성과 거래는 국내 원화 기반이 아닌 미국 달러 기반의 국제금융이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중심지 조성을 위해 두바이가 보여준 모델을 그대로 도입할 수도 있고, 호찌민처럼 단계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선도 사례를 벤치마킹한 국제금융중심지(가칭 부산 국제금융특구)의 설계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특구 내에서는 영미법 기반의 금융 법제를 구현해 국제적 기준의 금융중심지를 조성한다. 영미법은 런던과 뉴욕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홍콩 두바이 등 주요 금융중심지가 적용해 글로벌 투자자와 금융기관이 친숙한 법제이다. 이에 부산 금융중심지도 영미법 기반의 금융 법제를 구현해 해외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 할 필요가 있다.
둘째, 행정 금융감독 분쟁해결기구 등 부산 금융중심지만의 별도 거버넌스를 적용해 국제적 기준의 금융중심지를 조성한다. 두바이와 아스타나는 국제적 기준의 금융중심지 설립을 위해 앞서 언급한 영미법을 기반으로 자국의 체제와는 분리된 별도의 거버넌스를 적용하고 있다. 이로써 해외금융기관들은 제도적으로 보다 친숙한 행정과 금융감독하에 사업을 수행할 수 있었으며, 분쟁이 발생하면 영미법 기준으로 공정함이 고려되는 분쟁해결기구를 이용해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
셋째, 특구 내에서는 파격적인 세제혜택과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외환규제를 완화해 글로벌 자본과 금융기관의 안착을 유도한다. 과감한 세제혜택과 인센티브 제도는 국제금융중심지 조성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부산 또한 선박금융과 자산운용 분야에 특화된 세제혜택을 제공해 국제자본 유치가 필요하다.
이는 파격적이기는 하지만 부산에 국제적 기준의 글로벌 해양금융허브 조성을 위해서는 과감한 구현이 필요하다. 국제금융중심지의 육성과 경쟁은 역내가 아니라 국제적이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싱가포르 홍콩 두바이와 경쟁할 수 있는 금융중심지를 구현해야 한다. 후보지로 부산 영도를 주목할 수 있다. 도심과 인접하면서도 섬이라는 물리적 경계 덕분에 독립된 제도 실험이 가능해 ‘부산형 국제금융특구’를 구현하기에 적합하다. 새로운 제도 설계는 신중하되, 실행 가능한 변화부터 차근히 시작하자. 부산은 그 무대를 제공할 역량을 갖췄다. 작은 성과의 축적이 부산을 글로벌 해양금융허브로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