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자는 ‘시월의 세레나데’라는 주제로 무대에 섰다. 피리와 소프라노 바이올린 피아노가 함께한 무대에서 국악기 피리가 함께 편성된 독일 가곡(Lied)인 슈베르트의 ‘보리수’와 ‘송어’, 휴고 볼프의 ‘바람의 노래’와 ‘밤의 마법’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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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31일 부산 동래구 스페이스움에서 열린 ‘시월의 세레나데’ 공연. |
두 작곡가는 시대는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시를 음악의 중심에 둔 작곡가였다. 슈베르트가 독일 가곡의 문을 연 작곡가라면 볼프는 19세기 낭만주의의 정점에서 시와 음악의 일체화를 구현하며 독일 가곡(Lied)을 예술가곡으로 끌어올린 작곡가다.
19세기 낭만주의 문학과 함께 발전한 독일 가곡은 괴테 하이네 뫼리케 등 저명한 시인들의 작품을 가사로 주로 작곡되었는데, 괴테의 시로 작곡된 슈베르트의 ‘마왕’을 떠올려보면 음악만 들어도 시의 긴박한 흐름과 장면이 그려진다.
이처럼 시의 내용을 성실히 음악에 담아내는 것, 그것이 독일 예술가곡의 핵심이다. 필자가 연주한 볼프의 ‘바람의 노래’는 뫼리케의 시를 바탕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인간의 내면을 그린 곡이다. 바람의 흐름을 묘사하는 피아노의 쉴 새 없는 불협화음에 피리는 바람의 역할로, 소프라노는 아이의 역할로 대화하는 시 한 편이 음악 속에 살아난 느낌을 받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전통음악에도 시를 노래하는 장르가 존재한다. 시조에 선율을 붙여 노래하던 조선 선비들의 풍류음악인 가곡인데, ‘바른 음악’이라는 뜻의 정가(正歌)로도 불린다. 3장 6구의 45자 내외의 짧은 시조 한 수가 노래로 부르면 6분 가까이 이어지는 느린 곡을 어단성장(語短聲長), 즉 한 음절에 여러 음을 부르는 창법으로 부르는 것이 바로 가곡이다. 이는 중세 그레고리오 성가의 멜리스마적 방식으로 성가를 부르는 방식과도 닮았다. 정가는 단순히 느리게 부르는 것이 특징인 음악이 아니다. 음절을 느리게 지속하는 호흡과 여운을 노래하며 감정을 비워 스스로 고요해지도록 하는 품격 있는 성악 장르로 발전했다. 이러한 가곡은 1969년에 국가문화유산 ‘가곡’으로 지정되었고, 2010년에는 ‘한국의 가곡(Korean Court Song Gagok)’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국의 전통 가곡과 독일의 예술가곡 모두 ‘시의 음악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시의 언어를 따라 감정을 세밀히 그린 독일 가곡과 시조의 여운을 늘이며 마음의 평정을 노래한 가곡과의 차이는 있다. 표현 방식은 달라도 결국 두 음악 장르 모두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세계를 소리로 담는다. 시가 노래가 되는 순간 언어는 음악이 되고, 음악은 다시 사람의 마음속으로 되돌아온다. 그 여운이 지금도 우리의 삶을 조용히 울리고 있다. 시조가 음악이 되는, 느리고 고요한 음악인 가곡의 첫 시작 곡인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로 시작하는 ‘초수대엽’을 한번 감상해 보시길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