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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수의 그림산책] 김용조의 절필 작품 ‘신라 와당’

  • 황정수 미술평론가
  •  |   입력 : 2025-12-21 18:41:19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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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가 근대 서양화단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선구적인 화가 서동진이 설립한 ‘대구미술사(大邱美術社)’에 이인성(李仁星, 1912~1950)과 김용조(金龍祚, 1916~1944)라는 두 명의 천재적인 화가가 연거푸 나타난 덕이다. 두 사람은 모두 대구의 가난한 집에 태어나 겨우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어렵게 서동진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김용조의 ‘신라 와당’. 개인 소장.
그들 삶의 과정은 어려웠지만 고난을 극복해 가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특선을 거듭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제국미술전람회에서도 입선하는 등 유복한 집안의 화가 지망생보다도 더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품은 뜻을 다 펼치지 못하고 39, 29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김용조의 전하는 작품은 매우 드물다. 유화 소묘 등 겨우 십 수 점 정도에 불과하다. 십여 년 전쯤 매우 희귀한 서화첩을 본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 경주 석굴암이 복원된 뒤 석굴암 앞 석불사에 찾아온 저명인사들의 서화를 받아 모아놓은 첩이었다. 그곳을 방문한 일본인 화가들의 서화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인 화가로는 정종여와 최근배가 있었고, 뒤편에 반갑게도 김용조의 간단한 그림 하나가 있었다. 일필의 빠른 선으로 ‘금강역사’를 그린 것이었다. 제작 연도를 보니 1940년으로 김용조의 나이 25세 때의 일이었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경주를 방문해 석굴암에 들러 추억을 남긴 것이다. 본격적인 그림이 아님에도 김용조의 타고난 재능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었다.

그때 이후 김용조의 새로운 그림을 보고 싶었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근래에 그의 그림을 볼 기회가 생겼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데다 선묘로 그린 것이라 하니 보고픈 마음이 더했다.

10여 년 전 본 석불사 화첩이 생각나기도 했다. 필시 주인은 김용조의 작품이 매우 귀하니 작품의 진위를 따져 보고픈 마음이었던 것 같다. 보통 전래된 유화 작품과 달리 간단하게 선묘로 그린 작품은 전문가라도 진위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 작품을 보게 되었다. 포장을 풀고 그림을 대하는 순간 마치 살아 돌아온 김용조의 모습을 보는 듯 놀라웠다. 바로 10여 년 전에 본 ‘금강역사’와 작품 구성이나 글씨가 판박이처럼 같았기 때문이다.

오른쪽 위편에 간단한 선으로 거칠지만 비범한 필치로 ‘신라 와당’을 그렸다. 둥그런 암막새와 길쭉한 수막새를 쌍으로 배치하였다. 당시 대구 지역 미술계는 지역의 전통적인 문화에 관심을 많이 기울였다. 특히 가까운 신라 고도 경주는 대표적인 연구 대상이었다. 화가들도 경주 지역을 많이 그렸다. 손일봉의 신라 고분이나 와당 그림이 그렇고, 이인성의 그림 중에 ‘경주 산곡에서’가 대표적이다.

김용조의 이 그림도 이런 경향이 드러난 작품이다. 왼쪽 아래에 제작 연도를 적어 놓았다. 1944년 5월 7일에 그린 것이다. 석굴암에서 금강역사를 그린 지 4년 후이다. 두 그림의 구성이 같은 것으로 보아 김용조가 평소 누군가를 위해 간단한 그림을 그리는 전형적인 양식으로 보인다. 이 그림을 그리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나니, 그의 마지막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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