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 동원과 외환 건전성 규제 완화 등 달러 공급 방안을 내놨으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5원 오른 1483.6원으로 주간 거래(오후 3시반)를 마쳤다. 장중 한때 1484원을 돌파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나라가 어수선하던 지난 4월 9일(1481.1원)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상대적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98.18로 하락세이나 오히려 원화는 상대적으로 더 큰 폭의 약세를 보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23일 엔화 약세 지속 등의 영향으로 소폭 상승하며 연고점에 가까워진 23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한 은행 환전소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환율은 지난 9월 30일 1400원대로 올라 선 후 3개월째 1400원 후반에서 등락을 거듭한다. 시장에선 조만간 1500선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환율은 수입 물가, 기업 비용, 가계 부담을 좌우하는 핵심 지표다. 고환율 장기화로 당장 물가가 들썩인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2.4% 상승해 10월, 11월 연속으로 연고점을 찍었다. 생활물가지수는 2.9% 오르면서 1년 4개월만에 가장 높았다. 특히 수입품은 원화 가치 하락에 따라 달러 기준 가격 상승보다 원화 기준 상승 폭이 훨씬 커지는 현상이 심해졌다. 고물가의 가장 큰 피해는 서민과 저소득층이다. 환율 안정이 민생인 이유다. 기업 역시 환율 변동성의 직격탄을 맞았다. 과거엔 환율 상승이 수출에 유리하다고 봤다. 그런데 원자재와 중간재 수입 비용이 늘어나 이런 효과가 사라졌다.

이 때문에 정부가 근본 대책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환당국은 환율 상승 원인을 국민연금과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투자로 인한 수급 불균형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의 해외 투자 축소를 유도하고 있으나 이는 단기 대책에 불과하다. 환율이 고공 행진하는 건 일시적 수급 불균형이 아니라 경제 체질의 취약성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미국보다 낮고 저성장도 고착화해 장기적인 환율 상승은 불가피하다. 단기 처방을 넘어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야 하겠다. 미국 일본 등 기축통화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시장 불안 심리를 잠재우는 일도 시급하다. 또한 기업 거버넌스 개선, 주주환원 확대 등 정책적 노력을 통해 국내 자본시장 안정성을 높여야 달러 수급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다. 이날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개인투자자들이 해외주식을 사면 반대로 국내 주식을 파는 경향이 강해졌다. 결국 국내 주식 장기 수익률 기대가 높아져야 해외 주식으로 이탈을 막을 수 있다.

환율이 오르면 그만큼 원화 표시 자산 가치가 하락해 전 국민이 손해를 보게 된다. 고환율 고착화는 시장 불안 심리를 더욱 증폭시켜 경제 위기감을 키운다. 가장 시급한 경제 현안은 환율 안정이다. 정부는 통화량 증가로 원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돈 풀기’ 정책보다는 경제 기초체력을 키우고 일자리를 확대하는 근본 대책에 집중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