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가 살아 있는 나라에는 흔히 나라의 보물이라 불리는 국보가 존재한다. 유형의 유물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국보라는 호칭이 붙는다. 우리나라에서 인간문화재, 일본에서는 인간 국보라 불렸다. 전통 예술이 국보로 불리는 이유는 단지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단기간에 습득할 수 없는 기술과 감각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형성된 예술이기 때문이다. 몸과 호흡으로 전해지는 미묘한 감각은 세대를 거쳐 전승되며, 인간의 시간을 담은 무형 유산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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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보’ 중 가부키 ‘백로아가씨(白鷺の精)’ 한 장면.
출처=네이버 제공 |
최근 개봉한 일본 영화 ‘국보’는 국내에서도 주목받았지만, 일본 현지에서 123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일본 실사 영화 흥행 1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더 눈길을 끄는 점은 이 작품의 감독이 재일교포 3세 이상일이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가부키를 일본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미화하기보다 그 전통이 한 인간에게 요구하는 시간과 대가를 차분히 보여준다. 전통을 바라보는 태도가 혈통이나 국적이 아니라 그 예술을 감당해 온 인간의 시간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해야 함을 일깨운다. 이 영화를 통해 화려한 분장과 과장된 몸짓이 먼저 떠올랐던 가부키는 혹독한 반복과 신체 훈련의 결과임은 물론 무대 위의 한 동작 한 발성은 즉흥이 아니라 수십 년간 몸에 축적된 시간의 산물인 것이다. “뼈가 기억할 때까지” 반복하라는 스승의 말은 가부키가 단순한 연극이 아니라, 신체 전체를 매개로 완성되는 고도의 클래식 예술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필자는 이 장면에서 가부키는 더 이상 낯선 일본 전통이 아님을 느꼈다. 영화 ‘서편제’, 드라마 ‘정년이’ 속 판소리와 연기를 몸으로 익히는 과정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악보나 설명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감각의 세계, 오랜 연마 끝에야 비로소 인식되는 차이가 이 예술을 클래식이라 부르게 만든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가부키는 2008년, 판소리는 200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특정 민족의 전통을 넘어, 인간의 시간을 통해 완성된 예술이 지닌 보편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무형문화재 보호 제도를 갖추고 있지만 전승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은 무형문화재를 종목 단위로 설정하고 원형 보존에 초점을 두어 왔다. 필자 역시 국가무형유산 피리정악 및 대취타 종목의 이수자로서 이러한 전승 체계 안에서 배움을 이어왔다. 반면 일본은 기술을 구현하는 개인이나 집단의 기예 자체를 중심으로 보호하는 방식이 강하다. 영화 ‘국보’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뼈가 기억할 때까지’를 강조하는 장면은, 전통을 고정된 형식이 아니라 숙련된 인간의 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기술로 인식해 온 일본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결국 국보란 완성된 예술 작품이기보다 그 예술을 가능하게 만든 인간의 시간이 축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전통예술의 전승은 음악이나 동작을 외워 재현하는 문제가 아니라, 왜 같은 소리와 동작을 수십 년 반복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이해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영화 ‘국보’는 시간을 통해 인간이 예술 자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아냈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일본을 넘어 세계의 보편적 공감을 가진다. 전통예술 최고의 예인이 국보라 불리는 이유는 그 속에 한 인간의 삶 전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